[醫-政 협상장 진풍경]호통치는 醫…쩔쩔매는 政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31분


“식품의약품안전청 과장이 전문가이고 대표성이 있나. 식약청장이 직접 나와야지.”

“….”

“내 업무소관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물으셨으니까 답변드리는데….”

“잘 모르면서 왜 여기 앉아 있나. 소관이 아니면 가만히 있고 차관이 답변하라.”

국회의원이 공무원을 추궁하는 국정감사의 한 장면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 의쟁투 산하 10인소위 대표가 각각 10명씩 참석하고 있는 의―정(醫―政)대화의 현장이다.

서울 용산구 캐피탈 호텔. 경찰청장 사과와 공무원 문책 요구로 세 차례의 접촉을 성과 없이 끝낸 뒤 양측이 임의조제 문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댔다.

“의약분업 전의 관행이던 약사 임의조제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으니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의료계)

“개정 약사법에도 임의조제는 금지돼 있다. 오랜 관행과 국민의식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보건복지부)

“그러니 일반의약품 판매 단위를 7일분 이상으로 정하는 등 의료계 요구를 법제화하라.”(의료계)

“외국에서도 그런 식으로는 규제하지 않는다. 국민불편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보건복지부)

지난달 26일 시작된 의정대화는 4일까지 모두 8차례. 의료계 총파업(6일)을 앞두고 진행되는 협상인 만큼 의료계는 대공세를 벌이고 있는 반면 파업만은 막아보려는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의료계를 달래려고 원칙적인 답변과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의료계가 정부를 밀어붙이는 현장은 마치 국정감사장. 대화 첫날 의료계의 한 대표는 “우리는 정부와 얘기하러 왔다. 그러니 재정경제부와 경찰청도 와야지, 복지부만 참석해서 뭐 하느냐”고 복지부의 위상부터 따졌다.

정부 대표가 차관을 단장으로 공무원으로만 구성된 데 비해 의료계는 전공의는 물론 의과대학생까지 협상단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특징.

장석준(張錫準)복지부 차관과 김세곤(金世坤)비상소위 위원장은 격한 말이 오가면 손짓이나 말로 제지, 일단 정회를 선언해서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 다시 대화를 이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측 대표들은 내장을 다 빼놓고 나간다”며 “그러나 어렵게 이뤄진 대화의 장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미(朱珽美)복지부 서기관은 “처음에는 다소 경색됐던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지만 주수호(朱秀虎)의쟁투 대변인은 “성과가 있어야지, 분위기만 좋으면 뭐하나. 정부가 성의 있게 답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정대화를 보는 시각에서도 정부와 의료계의 거리는 한참 멀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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