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개社 판매가 유통 담합…동아일보 비밀문건 입수

  • 입력 2000년 6월 26일 18시 40분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SK, LG정유, 현대정유, S-Oil(구 쌍용정유) 등 국내 정유 4사의 판매가격 및 영업활동 담합 행위가 비밀보고서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석유제품 가격의 담합은 소비자가격 자체가 자의적으로 책정되고 그 과정에서 국내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해 왔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본보 취재팀이 단독 입수한 ‘유통질서확립대책반 주간 실적 및 계획’ ‘석유 수입업자의 국내 시장 진출 억제 방안’ 등 총 20여 페이지에 이르는 정유사 비밀문건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별로 유통질서확립대책반을 만들어 정유 4사 폴주유소(특정 정유사 표지를 단 주유소)의 판매가격을 특정시기에 단일화하는 등 공동보조를 취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북지역 유통질서확립대책반은 올 초 매주 한차례 가격협의와 석유수입사 감시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그 수신인은 정유 4사의 영업담당 임원으로 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정유 4사가 아닌 석유수입사로부터 석유제품을 공급받는 주유소가 이들의 폴주유소보다 싸게 판매할 경우 공동의 ‘가격대응책’을 펴 왔음을 보여준다. 한 수입사의 주유소가 가격을 내리면 그 주유소 주위의 정유사소속 폴주유소에 한해 가격을 일시적으로 더 낮춰 타깃이 되는 주유소를 고사(枯死)시키는 식이다.

이들은 또 ‘감시조’를 현장에 투입해 D사 T사 등 수입사 제품을 운송하는 자영 유조차들을 추적해 이들에겐 거래물량을 주지 않는 방법도 사용했다.

이 같은 행위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똑같이 이뤄졌다는 게 정유사 영업부서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정유 4사는 또 석유수입사들의 시장 진출이 본격화된 지난해 초부터 각사 분담으로 총 77억4000여만원을 마련해 인천 울산과 평택 등지의 저장탱크를 장기 임차하거나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으로 수입사들의 저장탱크 이용을 봉쇄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초의 한 보고서는 정유사들이 들여오는 원유와 석유수입사들이 들여오는 휘발유 등유 경유 등 완제품에 수입부과금이 차등 적용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됐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한 석유수입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그동안 독과점적 시장에서 누려온 기득권과 높은 마진율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수입사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정거래위도 26일 이 같은 보고서를 입수해 참고인조사에 들어가면서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가격을 결정, 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나 ‘거래지역 또는 거래 상대방을 제한하는 행위’ 등을 담합으로 규정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명백히 저촉되는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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