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항쟁 20돌]'5월 정신' 세계人權 씨앗으로…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천년의 빛 5·18-평화 인권 통일의 세상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광주를 중심으로 '5월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5월 정신'이 어떻게 해석돼 왔는지 과거의 행사주제를 통해 알아보고 5·18이 아시아 지역의 인권 평화 민주화운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살펴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광주가 '세계적인 민주성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제 '5월 정신'은 세계 인권운동사의 새로운 좌표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올 5·18 기념행사의 주제는 '천년의 빛 5·18-평화 인권 통일의 세상으로'. 과거 투쟁 일변도의 모습에서 벗어나 '나눔과 공존'을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또 인권과 정의의 메카인 광주를 전 세계에 새롭게 알리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통일의 시대를 열자는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번 기념행사 가운데 '동아시아 평화인권 국제회의'와 '임진각 통일음악회'가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5·18 기념행사가 '평화 인권 통일'의 의미를 갖기까지는 '20년의 진통'이 있었다.

97년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 17년간의 기념행사 주제는 '책임자 처벌'이었다.

5·18 첫 기념행사는 81년 5월 희생자 유가족이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망월동 5·18묘역에서 가진 추도식. 82년에는 관(官) 주도로 무등경기장에서 광주시민단합대회가 열렸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10주년인 90년까지 5·18행사는 망월동에서의 추모식 외엔 이렇다할 문화행사가 없었다. 투쟁 일변도로 행사를 치르다보니 문화행사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 5·18단체와 대학생들은 80년 당시 항쟁의 거리였던 금남로에서 기념대회를 개최하려다 경찰과 맞서기 일쑤였고 매년 5월 금남로는 최루탄과 돌멩이로 얼룩졌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광주지회 이명한회장은 "80년대에는 분노가 채 가라앉지 않은 탓에 5·18행사는 곧 정권을 겨냥한 투쟁이었다"고 말했다.

87년 6·29선언은 '5월 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이후 5·18 행사는 전국으로 파급됐다. 항쟁을 다룬 비디오가 제작돼 보급되고 각 지역에 5·18홍보단이 파견되기도 했다.

93년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5·18특별담화'를 통해 광주수습책을 제시하고 12·12와 5·18을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5·18행사는 어느 정도 제 모습을 찾게 됐다. 아울러 전국 동시의 추모제가 열리고 심포지엄 사진전 등 그날을 되돌아보는 행사가 봇물을 이뤘다.

광주가 '한(限)'을 접고 '인권과 평화'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정부 차원의 기념식이 새 묘지에서 열린 97년부터다. 98년에는 '아시아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아시아 인권대회, 99년에는 5·18정신 계승을 위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정수만(鄭水萬)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이제 5·18은 '나눔의 정신'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번 20주년 행사가 서로 고통을 껴안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국민운동으로 승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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