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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15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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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북한산 보현봉을 바라보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국립공원관리소 구기분소 직원들의 감회는 남다르다. 각종 종교단체에 의해 심하게 훼손된 보현봉을 결국 지켜내고 죽어가던 자연을 되살렸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국립공원 관리소 직원들은 그동안의 투쟁을 ‘보현봉의 자연을 되찾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수십년 전부터 보현봉은 이른바 ‘능력봉(能力峰)’ 또는 ‘할렐루야봉’이라는 소문과 함께 수많은 종교단체들에 시달려왔다. 이들은 보현봉 일대를 점령하고 암굴과 텐트 속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많게는 300여명이 모여 하는 기도소리로 조용해야 할 산 속은 늘 소란했고 산 속 곳곳에 만들어진 130여개의 기도터와 제단은 등산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제사 등에 쓰인 후 버려진 음식물과 배설물로 파리떼가 들끓었고 계곡물은 누렇게 변해버렸다.
98년 국립공원관리공원 직원에게 국립공원 훼손행위에 대한 사법단속권이 주어지자 6명의 구기분소 직원들은 본격적으로 종교단체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산 속을 뒤져 기도회 장소를 찾아내고 바위 위에 새겨진 글씨와 마애불 등에 페인트로 그려진 십자가 등을 지웠다.
과거에 배짱으로 버티던 사람들이 벌금을 부과하자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98년부터 지금까지 부과된 과태료 건수만 1064건. 하루에 한 건 이상 과태료를 물린 셈이다. 기도회장으로 이용될 만한 곳에는 아예 줄을 쳐놓아 출입을 막았다.
공원 훼손행위에 대한 직원들의 단속은 한마디로 ‘억척’ 그 자체였다. 단속을 피해 기도자들이 야밤이나 새벽을 이용하기 시작하자 관리공원 직원들도 활동시간을 한밤으로 바꾸었다. 구기분소 직원 심요한씨(40)는 모 종교단체 창시자 장모씨에게 주먹으로 맞아 턱뼈를 다쳤고 양기식(梁基植·44)소장은 단속카메라를 빼앗으려는 기도자와 몸싸움을 벌이다 오른쪽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기도자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하루 300여명에 이르던 기도자들이 20여명으로 줄었다. 특히 보현봉과 형제봉 일대가 올 1월부터 3년간 자연휴식년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등산로를 제외한 지역의 출입은 금지됐다. 인간의 등쌀에 시달리던 보현봉이 드디어 한숨을 돌린 것이다.
14일 일요일을 맞아 딸아이를 데리고 보현봉을 찾은 김인수씨(36·서울 종로구 평창동)는 “보현봉 주변의 자연풍광이 다시 살아났어요”라며 미소를 띠었다. 국립공원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환경운동가 이장오(李壯五·52)씨는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구기계곡에 나타났다”며 “그릇된 종교의식에서 산을 훼손하는 행위를 우리 모두가 함께 감시해야 우리의 산이 살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