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지역 동식물 피해조사]"물까지 오염 동물생존 어렵다"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04분


“일부 이동성 동물들이 돌아오고 있으나 먹이를 구할 수 없고 물까지 오염돼 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산림 복원을 위해 부득이 인공조림을 하려면 불 탄 나무를 그대로 둔 채 조림하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환경부의 ‘강원 산불발생 지역 야생 동식물 피해조사단’은 24일 5일간의 현장조사를 마친 뒤 이같이 밝혔다.

환경부 피해조사단 16명은 19일부터 23일까지 강원 고성 강릉 삼척 동해와 경북 울진 등 5개 지역을 돌며 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 운봉산(해발 286m)의 경우 뜨거운 불길 때문에 바위가 터졌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산골짜기의 계곡물은 불에 탄 나무와 흙이 함께 휩쓸리면서 흐름이 지연돼 검은 늪으로 변하다시피 했다.

7일 산불이 난 뒤 보름 정도가 지나면서 계곡에는 불을 피해 일시 달아났다 다시 돌아온 노루 고라니 등의 발자국이 많이 눈에 띄었다.

조사팀은 “고라니와 새 등 일부 이동성 동물들이 이전의 서식지로 돌아오고는 있으나 물이 심하게 오염돼 당분간 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96년 산불 이후 인공조림된 고성군 토성면 삼포리 일대 700여㏊의 산림은 또다시 화마가 덮치는 바람에 마지막 영양분마저 사라져 ‘회갈색 사막’으로 변했다. 지표면이 마사토로 변해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산자락의 흙이 밑으로 씻겨 내려갈 정도였다.

민통선 북방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일대는 86년 산불 이후 자연복원이 되면서 신갈나무 등 활엽수가 많이 자생해 이번 산불의 피해 정도는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강릉시 사천면 야산의 경우 주로 30년 안팎의 소나무 군락이 불탔고 청설모 등 불에 타 죽은 동물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국립환경연구원 최병진(崔秉進)연구원은 “멧돼지 고라니 등 이동력이 좋은 동물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으나 곤충류를 비롯해 뱀 도마뱀 들쥐 두꺼비 두더지 등 소형 포유류와 양서 파충류는 대부분 죽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최연구원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동물들도 그 지역에 서식해온 다른 동물들과의 심한 영역다툼으로 생존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부 곤충류는 땅 속에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인근에 먹이사슬이 사라졌기 때문에 생존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사단의 일원인 강릉대 이규송(李奎松·식물생태학)교수는 “동해안에서 반복되는 대형 산불은 불에 타기 쉬운 방대한 소나무 군락 때문”이라며 “신갈나무 등 활엽수림으로 복원하면 산불의 확산 속도나 피해 면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자연복원 지역은 인공조림 지역보다 식물과 야생동물의 회복속도가 빠르고 훨씬 다양한 동식물과 곰팡이의 서식지를 제공할 수 있다”며 가능한 한 자연복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의했다.

환경부 유태철(柳泰喆)사무관도 “자연복원된 활엽수림은 인공조림된 잣나무나 소나무림보다 불에 강하다”며 “인공조림을 하더라도 불에 탄 나무를 그대로 두고 조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강릉〓경인수기자> sung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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