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조망 특별좌담]南北협력위해 공통분모 찾아야

  • 입력 2000년 4월 6일 19시 38분


<<새 천년 새 세기에는 과연 한반도에도 화해와 협력의 새 바람이 불 것인가. 동아일보는 부설 21세기 평화재단 및 평화연구소 출범을 기념해 평화재단 이사인 김경원, 김학준, 동훈, 이인호씨 등 전문가 네 사람의 특별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조망(조망)해 보았다. 좌담은 5일 동아일보 회의실에서 김학준고문의 사회로 진행됐다.>>

△참석자(가나다 순)△

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전 주미대사)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본사논설편집고문)

동훈(董勳·남북평화통일연구소장·전 통일원차관)

이인호(李仁浩·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전 주러시아대사)

▽김학준총장〓동아일보는 3일 부설 공익법인으로 21세기평화재단과 평화연구소를 창설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재의 남북관계를 점검해 봤으면 합니다. 21세기에는 한반도에도 화합과 평화공존, 평화통일의 시대가 열릴 것인지 하는 문제들과 현 정부 대북포용정책의 타당성 같은 것도 다뤄봤으면 합니다.

▼北 변화여부가 열쇠▼

▽동훈소장〓북한의 변화여부가 열쇠지요. 학자들에 따라 포용정책에 대한 이견이 있지만 뭔가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이인호이사장〓포용정책의 중요한 의미는 국내상황에 비춰볼 때 몇해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포용적 시각을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길게 봐서 이를 대북정책 뿐만 아니라 국가 대 국가, 민족 대 민족의 관계에서 원론적으로 다루자는 것입니다.

▽김경원원장〓남북문제는 전망부터가 어렵습니다. 미국은 21세기에 예상되는 위협으로 북한 탄도미사일의 미 본토 공격가능성을 들고 있어요. 둘째, 우리가 한반도 문제를 생각할 때 북한이 개혁 개방만 하면 한반도 안보와 평화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생각 등 몇가지 입증되지 않은 가정에 쉽게 빠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중국도 개혁 개방했지만 대만과의 관계에서 긴장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경제체제가 같은 나라에도 얼마든지 갈등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재단은 북한과의 성숙한 토론을 시도해보는 교량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김총장〓90년대초 공산권이 무너질 때와 김일성(金日成)주석이 사망한 뒤 북한도 무너지지 않느냐는 생각을 일부에서 가졌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임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젊은 세대가 자라면 자랄수록 남북문제를 냉전적인 대결구도가 아닌 민족적 차원에서 풀어야한다고 생각해요. 한가지 걱정은 북한의 미사일, 핵개발에 대해 과연 우리가 진상을 얼마나 알고 다루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김원장〓미사일, 핵문제는 솔직히 독자적으로 우리가 확인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방을 통해서 전해듣는 것이지요. 영변 핵연료봉의 봉인작업이 진행됐는데, 그것이 아니었으면 북한이 지금 상당한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입니다.

▽동소장〓북한의 체제유지 각도에서 대외정책과 대내정책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인구 산업 과학기술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두드러진 것은 군사력이에요. 평양의 핵무기개발은 마치 70년대 우리와 같은 발상에서 시작된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물론 이것이 대단한 위협이지만 북한이 미 일 등과 교섭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규칙이 어떤 것이라는 점을 터득할 것으로 봅니다.

▽김원장〓북한의 핵기술 능력을 고려해볼 때 통일되면 남북한이 합쳐서 핵과 미사일을 다 갖는다는 생각을 주변국가들이 갖게 되어 한반도 통일을 경계하게 됩니다.

▽김총장〓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되고 동독이 무너진 직후에 김일성주석은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대담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김주석은 “우리 조선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며 자신은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온 게 ‘우리식대로 살자’라는 구호입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거래하겠다는 ‘핵심고리론’을 들고 나와 핵, 미사일 외교를 통해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냈어요. 북한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이 때부터 연방보다는 북한의 독자적 생존을 앞세운 국가연합적 성격의 통일방안을 강조했습니다.

▽김원장〓지난 10년간 북한은 체제 공고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동독이나 구 소련이 서방세계에 잘 보이려고 개혁 개방하다가 붕괴됐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이사장〓지금은 군사력의 의미가 변했습니다. 인터넷 혁명 등 군사력도 이제는 물리적 힘보다는 기술과 정보혁명의 성과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북한도 조만간 수용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정보통제도 사실상 힘들어질 것으로 봐요.

▼남북대화 쉽지 않을 것▼

▽김원장〓남북간 대화가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이 한국정부와 실제로 대화를 하고 문서에 서명한 것이 91년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 아닙니까. 당시에도 미국과 교섭하려던 북한이 한국과 대화하라는 주문을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우리 입장이 바뀌어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미국과 우방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김총장〓최근 서방국가와 관계개선을 하려는 북한의 활발한 외교움직임과 북-미 관계 개선, 북-일 수교문제는 어떻게 진전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원장〓일본은 미국의 대북한 전략의 틀과 모순되지 않는 방향과 속도로 접근하겠지요. 또 일본인 납치문제가 일본 국민에게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궁극적으로 한미일 공조체제로 인해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북한과의 관계를 급속도로 진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이 또 알아야 할 것은 실제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점입니다.

▽동소장〓30년 전 우리가 산업화와 근대화를 위해 대일 청구권 자금을 필요로 했던 것과 지금의 북한상황에 닮은 부분이 있어요. 일본정치계가 지금이나 그때나 여론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한일회담 당시에는 일본사회가 좌경분위기여서 장애가 됐고,지금은 일본사회가 우경화되어서 북-일회담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일본의 여론이 바뀔 어떤 노력을 해야 북-일관계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총장〓푸틴의 러시아는 어떻습니까.

▽이이사장〓러시아는 이제 동북아에서 자체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입니다. 러시아를 배제한 4자회담 체제는 결국 한계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남북문제에 대해 러시아는 남북당사자 간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김총장〓남북 교류협력으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북한 전반의 경제적 형편과 산업을 고려할 때 남북교류가 민간경제 차원에서 어느 정도 진전될 수 있겠습니까.

▽동소장〓남북 경협은 서로 믿는 신뢰가 없이는, 또 조국의 장래라는 비전없이는 어렵습니다. 돈벌이만 하겠다고 나서면 대북 경제협력 문제는 발붙이기 힘듭니다.

▽김원장〓우리가 북한을 흡수통일할 생각이 없다거나 통일에 관심이 없다는 말같은 것도 하면 할수록 북한은 불신을 갖습니다. 남북관계는 더 넓은 세계화, 정보화의 틀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인간사회가 변화하고 세계역사의 바퀴가 돌아가는 가운데 북한도 어쩔 수 없이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약속하면 꼭 신의지켜야▼

▽김총장〓그렇습니다. 남북이 교류협력을 하려면 신뢰를 쌓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단 약속을 하면 북한도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남북사이의 내쟁(內爭)적 성격이 무척 깊습니다. 분단이 강대국 정치의 희생이라는 점이 각인됨으로써 남북간 내쟁성과 불신이 관계개선을 얼마나 심각하게 가로막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고 생각해요. 남북 신뢰를 회복하고 적개심을 희석하기 위해 ‘우리라는 감정(We feeling)’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이사장〓남북이 다같이 냉전의 희생자이자 죄없이 죄인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잘 지내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김총장〓우리가 이제 새 천년 첫해를 맞아 한국전쟁이 남겨놓은, 우리를 구속하는 틀을 극복하고 남북이 평화공존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동소장〓우리가 이제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되게 하는 과정이 평화와 공존이요,결국은 남북평화통일일 것입니다. 남과 북이 민족적 입장에 서서 진지하게 대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21세기 민족발전을 위한 국가적 과제로 민족의 존재양태와 국가양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민족의 정체성과 우리 민족이 이상과 목표로 삼아 나아갈 노선을 국민적, 민족적 합의로 찾아야 해요.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민족격’의 문제를 고뇌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21세기평화재단의 발기취지문에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시급히 창출하고 새질서를 엮어가야 한다고 밝혔듯이 언젠가는 올 민족통합의 형태를 모색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민족지 동아일보의 부설 기관으로서 연구소와 재단은 당당히 민족을 얘기할 자격과 전통 위에 서있기 때문에 남북의 현실을 초월한 시각에서 연구하고 설계해야 합니다. 동시에 21세기를 살아갈 ‘스탠더드 코리아’를 설정해서 궁극적으로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민족의 미래까지 생각을▼

▽이이사장〓한반도 문제를 지구촌 전체의 운명과 연결해 풀어야 합니다. 통일 이전이든 이후든 우리가 이룩할 사회상, 인간상을 모색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런 일에 21세기 평화재단이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남북문제는 통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겨레가 품격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민족의 미래까지도 생각해야 해요.

▽김원장〓현실을 현실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남북이 불신을 없애는 신뢰구축 조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한민족의 삶이 어떤 모양과 구조 가치관에 기초를 두고 있느냐에 대한 비전을 향해 가다보면 남북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체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의 역사적 성취에 대해 우리 민족이 긍지를 가져도 된다고 봅니다.

▽동소장〓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남북이 희망의 표징적인 ‘우리민족 공영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남북간에 끊겼던 혈맥을 잇는 우람한 사업이 전개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김총장〓21세기 한반도의 화합과 번영도 우리 민족이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21세기 평화재단, 연구소가 우리 민족의 큰 과제인 남북의 평화공존과 궁극적인 평화통일에 현실적으로 이바지하기를 바라며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리〓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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