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씨가 밝힌 피랍악몽]"北에 끌려갈까 공포에 떨었다"

  • 입력 2000년 2월 24일 23시 11분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했을 때 ‘북한공작원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오히려 한숨을 돌렸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1일 동료와 함께 납치됐다 18시간 만에 극적으로 탈출한 조명철(趙明哲·41·대외경제정책연구소연구원·전 김일성대 교수)씨는 2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납치됐을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조씨는 당시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고 말했다.

동북아경제협력문제 등을 중국측과 협의하기 위해 동료연구원 정모씨(39)와 함께 지난달 30일 출국, 베이징의 캠핀스키호텔에 머물던 조씨는 1일 오후 11시경 호텔을 나서 커피숍을 찾다가 우연히 인근 식당 여종업원 두명을 만난 게 ‘하루 지옥’의 시작이었다. 이들을 따라 인근 카페에 도착해 여종업원들의 소개로 조선족 두명과 술자리에 합석한 지 5분쯤 뒤 이들 조선족이 갑자기 일어나 조씨와 정씨를 덮쳤다는 것.

의식을 잃었던 조씨는 다음날 아침 팔다리와 눈 입이 노끈과 테이프 등으로 꽁꽁 묶인 상태에서 정신을 되찾았다. 온몸이 쑤셨다. 조씨는 북한공작원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범인들이 금품을 요구해 순간적으로 ‘목숨은 건지겠구나’하는 생각에 오히려 기뻤다는 것.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조씨는 범인들이 들이미는 휴대전화로 평소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부탁해 국내의 한모씨(61·여) 계좌로 2억5000만원을 입금했다. “행동이 차분하고 자연스러운데다 몸값을 요구하고 몸을 결박하는 수법 등이 너무 능란해 상습범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조씨는 설명.

탈출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한씨의 계좌로 돈을 입금받은 한씨의 아들 장모씨(중국체류중)가 신원확인을 위해 범인들에게 조씨의 여권을 요구했다. 이날 오후 5시경 조씨는 범인들과 함께 여권이 있는 호텔로 온 직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로비에 있던 중국 공안과 합세해 격투 끝에 이들을 붙잡았고 같은 시간 정씨도 격투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 후 범인들이 위협용으로 몸에 설치해두었던 폭탄을 떼어내면서 가짜폭탄임을 알았다는

조씨는 3일 귀국 후 아직도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등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조씨는 “중국은 수많은 한국인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당국이 자국민 보호에 좀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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