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000학년도 大入 논술 문제-해설]

  • 입력 2000년 1월 10일 20시 07분


※ 문제지와 답안지에 수험생의 인적 사항을 기입하시오.

※ 답안은 연필 이외의 흑 청색 필기구로 작성하시오.

▼ 문제 ▼

다음 제시문을 읽고 아래 논점들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히면서,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논술하라.

-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이란 어떠한 인간인가?

- 아이들에게 도덕 교육은 불가능한가?

<답안을 작성할 때 지켜야 할 사항>

1. 제목을 쓰지 말 것.

2.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을 쓰지 말 것.

3.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4. 어문 규정과 원고지 작성법에 따를 것.

5. 1,6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200자)로 쓸 것.

<제시문>

이성(理性)을 갖추는 시기에 도달할 때까지는 도덕적 존재라든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념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되도록 그런 관념을 나타내는 말은 아이들 앞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처음에 그런 말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을 가지게 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바로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머리 속에 새겨진 최초의 잘못된 관념은 오류와 악덕의 씨가 된다. 따라서 첫발을 특히 주의하여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가 감각적인 사물에 의해서만 자극을 받는 동안에는 아이의 모든 관념이 감각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주위 어디를 보아도 감각적인 세계만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는 당신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든지, 또는 당신이 말하는 도덕적인 세계에 대해 평생 지울 수 없는 환상적인 관념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아이와 함께 토론하라.” - 어떤 철학자가 제시한 중요한 준칙이다. 이 말은 오늘날 대단히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준칙을 지킨 결과는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어른과 토론을 해 온 아이처럼 어리석은 존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모든 능력 중에서 이른바 다른 모든 능력들을 종합한 능력인 이성은, 가장 까다로운 길을 통해, 그리고 가장 늦게 발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려 하고 있다. 훌륭한 교육이란 이성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성에 의해 아이를 교육하려 한다. 그것은 교육을 맨 마지막 단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즉, 목표를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아이가 이치를 분별한다면 그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아이에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말만으로 만족하는 습관을 들여 주고, 또 아이들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일일이 따져서 자신이 마치 선생과 똑같이 지혜로운 인간인 양 착각하게 하여 논쟁을 좋아하는 반항아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어른이 합리적인 동기에 의해 무엇인가를 아이에게 요구한다는 것에는 반드시 탐욕이나 불안, 허영심 따위가 결부되어 있다.

사람들이 아이에 대하여 행하는, 혹은 행할 수 있는 도덕 교육의 교훈은 대부분 다음과 같은 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선생: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 왜 안 되죠?

선생: 그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아이: 나쁜 짓? 어떤 것이 나쁜 거죠?

선생: 금지되어 있는 일을 말한다.

아이: 금지되어 있는 일을 하면 어째서 나쁜가요?

선생: 너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게 된다.

아이: 그럼, 남들이 모르게 하면 되지요.

선생: 누군가가 네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아이: 숨어서 하겠어요.

선생: 네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아이: 거짓말을 하면 되죠.

선생: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이: 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나요?

선생: 그것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

이것은 피하기 어려운 순환이다. 여기서 더 벗어나면, 아이는 당신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것은 참으로 유익한 교훈이다. 사람들은 이 대화를 어떤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선과 악을 아는 것이나 인간은 왜 여러 가지 의무를 지켜야 하는지 등의 문제는 아이들이 이해할 영역이 아니다.

자연은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아이로 있기를 원한다. 이 순서를 어지럽혀 놓으면, 익지도 않고 맛도 없는 그리고 곧 썩어버리는 과일을 만드는 꼴이 된다. 우리는 어린 박사와 늙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아이에게는 아이 특유의 사물을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느끼는 법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방법 대신 어른들이 보는 법, 생각하는 법,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처럼 분별 없는 짓은 없다. 따라서 열 살 된 아이에게 판단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에게 6척의 키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사실 그 정도의 나이에 이성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서울대가 밝힌 답안작성 요령>

주 논제는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인 인간은 어떻게 형성되는가?”이다.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규정하고, 도덕 교육의 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면서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를 논의해야 한다. 따라서 제시된 두 가지 논점은 주 논제에 대한 답안 작성의 실마리가 된다.

먼저, 첫째 논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소재를 제시문 가운데서 찾는다. 제시문에서 찾을 수 있는 ‘이성’의 규정 요소로는, 도덕적 존재라든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념을 가지는 능력, 감각과는 다른 것, 개념적인 토론의 능력, 인간의 모든 능력 중에서 다른 모든 능력들을 종합한 능력,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늦게 발달하는 능력, 교육의 최종적인 목표, 이치를 분별하는 능력, 합리적인 동기에 의해 무엇인가를 설득하는 성향, 선·악의 가치를 구별하고 의무들을 이해하는 능력, 판단력 등이다. 이런 요소들과 평소의 독서와 사고를 통해 ‘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을 활용하여 자기가 생각하는 ‘이성’의 개념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성을 갖춘’의 규정 요소는 제시문 가운데서 많은 것을 찾을 수 없지만, 그러나 핵심적인 요소들인 선과 악을 아는 것, 인간이 왜 여러 가지 의무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등이 제시되어 있다. 나아가 가치 기준과 의무 개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원리적 규범의 내면화를 통한 실천력의 함양이 강조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의 모습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덕목을 내면화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형태로 그려질 수 있다.

다음으로, 둘째 논점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할 소재를 제시문에서 찾는다. 제시문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면, 글쓴이는 10세 정도의 아이에게는 이성적인 방법에 의한 도덕 교육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부작용 내지 해악을 초래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도덕 교육이 전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감성적인 지도를 통해서는 도덕 교육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의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거나 반박하면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규율을 통한 초기 도덕 교육의 가능성과 중요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주 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논술한다. 이 때,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이 저절로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하면 그 이유를 밝히고, 일정한 자연적 사회적 조건 아래에서만 형성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조건들의 내용과 적절성을 구명한다. 또한 일정한 교육 과정을 통해서 형성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과정을 제시한다. 이와는 달리 어떻게 해도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의 형성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끝으로, 필요하다면 마무리말을 덧붙인다.

<채점 요소>

1. 지시 사항을 준수하고 있는가?

2. 논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있으며, 논거는 적절한가?

3. 구성은 논리적이며, 표현은 적절한가?

▼ 해설 ▼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의 형성 과정’이란 논제의 결론은 크게 △저절로 형성된다 △일정한 조건 아래서 형성된다 △형성될 수 없다로 나눠질 수 있다.

문제에서 제시한 두가지 논점은 답변의 바람직한 과정을 제시한 것으로 답안이 중구난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제어장치다. 따라서 답안의 우열은 타당한 논거와 논리성에 따라 가려질 것이다.

첫째 논점에 답하기 위해서는 ‘도덕’과 ‘이성’에 대한 개념 규정이 필요하다. 제시문에서 나온 도덕과 이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험생이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에 대한 개념 규정을 하고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둘째 논점은 복합질문이다. 즉 “도덕 교육은 성인에게만 가능한가” “아이들에게는 어떤 다른 어떤 교육이 가능한가”라는 두가지 물음을 합친 것이다. 따라서 이 두가지 물음에 한꺼번에 답해야 한다.

이같은 고찰을 한 뒤 도덕성을 갖춘 이성적 인간의 형성 과정을 밝혀야 한다. 이때 인간에 대한 수험생의 관점이 답변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인간이 저절로 완전하게 되는가, 아니면 특정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가에 대한 글쓴이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수험생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점수에 관계가 없다. 수험생이 왜 그런 입장을 택했는지 논리적으로 이유를 밝히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를 들면 된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 정선학 논술팀장은 “‘열린 교육’ ‘개성 존중’ ‘수행 평가’ 등 현재 우리 교육의 현실과 관련된 구체적인 예를 들면 생동감있는 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준우기자>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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