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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29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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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염창동사무소에는 이달에도 어김없이 현금 100만원이 든 봉투가 전달됐다. 누군가 지난해 9월부터 한달도 거르지 않고 매달 100만원씩 보내오고 있는 것.
이달 중순 동사무소 직원들은 잠시 ‘실망’하기도 했다. 매달 10일 어김없이 전달되던 돈봉투가 들어오지 않자 “이번 달은 그냥 넘어가나 보다”하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추측은 빗나갔다.
그동안 ‘얼굴없는 천사’를 대신해 봉투를 전달해온 염창동 주민 윤모씨(44·자영업)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최근 동사무소를 찾은 것.
윤씨는 지난해 처음 돈을 전달하며 “잘 아는 분이 돕고 있는데 ‘세상에 알려지면 지원을 중단한다’고 했다”고 ‘천사’의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동사무소도 ‘천사 찾기’를 포기했다. 동사무소측은 이 돈을 생활보호대상자는 아니지만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불우노인 영세민 등 10가구에 매달 10만원씩 전달해왔다. 또 서울 은평구 구산동 ‘결핵환자촌’에는 16일 트럭 1대가 20㎏짜리 쌀 700포대를 싣고 나타났다.
트럭을 뒤쫓아온 10여명의 남자들은 말없이 판잣집 200여채가 몰려 있는 고개를 오르내리며 가구마다 쌀 2,3포대씩을 나눠준 뒤 사라졌다. “고마운데 어디서 오신 분들이냐”는 주민들의 질문에 이들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해 이맘 때도 쌀 800포대를 전달한 뒤 사라졌었다.
주민 김상길(金尙吉·68)씨는 “쌀을 나눠주던 한 사람이 휴대전화로 상대편을 ‘사장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봐서 어느 중소기업체에서 쌀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핵환자촌’은 60년 인근 은평구 역촌2동에 결핵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시립서대문병원이 설립된 뒤 퇴원한 환자들이 모여 살면서 조성됐다. 현재 주민 300여명 가운데 180여명이 결핵환자로 대부분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24일로 모금활동을 끝낸 구세군 자선냄비에도 100만∼200만원을 넣는 ‘얼굴 없는 천사’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85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서울 중구 명동의 자선냄비에는 어김없이 100만원권 수표가 들어왔다.
이 ‘천사’의 선행이 알려졌기 때문일까.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 서울역 등 서울 시내 10여 곳의 자선냄비에 100만∼200만원의 뭉칫돈이 기부됐다.
구세군 대한본영 손명식(孫明植·58)사관은 “얼굴 없는 천사들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착한 일을 하려는 분들이니 그 뜻을 존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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