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폭우]『자식같은 닭 4만마리 잃었어요…』

  • 입력 1999년 8월 2일 19시 26분


1일 새벽 물이 빠진 뒤 허겁지겁 달려온 양계장 앞에서 신완철(申完轍·35·경기 연천군 연천읍 동막1리)씨는 할 말을 잊었다.

닭 4만마리의 울음소리로 지난 한달여간 떠들썩했던 곳. 그 북적거림과 함께 익어가던 신씨 가족의 꿈은 물에 잠겨 싸늘하게 식어버린 병아리 떼와 함께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단 며칠만 늦게 수해가 왔더라도….’

울음을 터뜨리며 하늘을 원망해도 부질없는 일이었다. 6세와 8세인 두딸과 아내(31) 그리고 신씨에게 남은 건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세시간마다 모이를 주며 자식처럼 돌봤습니다. 곧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었는데….”

신씨는 IMF 귀농자. 지난해 초 10여년간 근무하던 부산의 사출공장에서 인원을 감축할 때 그는 선뜻 사표를 냈다. 고향이 그리운데다 친형이 양계장 사업을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4월 고향인 연천읍에 오자마자 퇴직금과 전세금 2000만원을 모두 양계장 사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가축이라고는 개 몇마리 길러본 게 전부였던 그가 처음부터 성공을 거둘 순 없었다.

결국 돈을 모두 날렸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5월 그는 농협에서 귀농자금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병아리를 키울 자신이 있었다.

양계장 옆에 3평 컨테이너를 마련, 온 가족이 기거하며 밤낮으로 병아리에 매달리기를 한달여.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시장에 출하할 수 있을 정도로 병아리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밤 몰아닥친 흙탕물은 모든 걸 앗아갔다. 외상으로 구입한 2700만원 어치의 사료도, 300만원어치의 소독약도, 잘 살아보겠다는 꿈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2일 오전까지도 신씨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닭들은 썩기 시작해 고약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와 그의 아내는 양계장 앞에서 절망의 한숨을 토해낼 뿐 움직일줄 몰랐다.

〈연천〓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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