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류상황 재정리]「귀순자 발언」→무장군인 데려가

  • 입력 1999년 6월 29일 19시 30분


민영미(閔泳美)씨가 북한 환경감시원에게 관광증을 압수당한 것은 20일 오후2시경. 감시원은 민씨에게 ‘사죄문’과 벌금 100달러를 부과했다. 사죄문은 ‘금강산 관광을 와서 법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여 100달러를 낸다’는 것으로 감시원이 불러주는 대로 작성했다.

오후 8시경 “관광증을 돌려줄테니 따라오라”는 감시원의 말을 듣고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간 민씨는 권총을 휴대한 4명의 군인들에 의해 컨테이너에 수용됐다.

21일 오전 2시경 조사원 3명이 귀순유도 발언을 시인하는 내용의 ‘사죄문’을 강요했으나 민씨는 ‘단순히 말을 걸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는 내용의 자술서를 세차례 썼다.

조사원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왔느냐.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3년이고 10년이고 맛을 봐야 한다”고 위협하며 서류뭉치로 책상을 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날 하루종일 조사를 받던 민씨는 밤10시경 극도의 불안감으로 정신을 잃어 응급처치와 함께 링거주사를 맞았고 22일 오전6시반경에는 가족생각을 하다 또다시 쓰러졌다.

22일 오후1시경 ‘금강산여관’으로 옮겨진 민씨는 이날 저녁 인근 온천을 다녀왔다. 23일과 24일에는 평양에서 온 2명의 조사원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더이상 말하지 않으면 법대로 처리하겠다. 애기 아빠와 아들이 보고싶지 않으냐”며 회유와 협박을 반복했다.

심신이 극도로 지친 민씨는 결국 24일 오후5시경 자포자기 심정으로 조사원이 내민 ‘사죄문’(A4용지 2장반)을 그대로 베껴 제출했다.

민씨는 25일 오전7시경 조사원의 요구에 따라 ‘사죄문’에 무인을 찍고 서명을 했다.

오후5시20분경 조사원으로부터 “떠날 준비를 서두르라”는 통보를 받은 민씨는 6시까지 ‘사죄문’ 낭독장면을 비디오로 찍은 뒤 6시15분경 현대측에 인계됐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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