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편 「인술의 꿈」 임상순씨, 장기기증 승화

  • 입력 1999년 2월 9일 19시 22분


뇌사상태에 빠진 한 의사가 ‘못다한 인술의 꿈’을 장기기증으로 대신하고 삶을 마감했다.

9일 3명에게 장기를 기증해 새 생명을 준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내과의사 임상순(任祥淳·28·레지던트 1년)씨.

그는 4일 오전 5시반경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출근하던 중 종로구 사직터널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졌다.

어머니 진창덕(陳昌德·61)씨가 닷새동안 밤을 새우며 아들을 지켰으나 그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대 스승들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에 의해 뇌사판정이 내려졌다.

진씨는 9일 “병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의 길을 택한 아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환자를 살리고 싶을 것”이라며 담당 의사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임씨의 동료 의사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며 어머니를 만류했으나 “아들이 의사의 길에 생을 걸고 싶어했다”며 “이 길만이 진정으로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라는 뜻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수술실에서 김순일(金舜一)교수의 집도로 임씨의 장기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임씨의 몸에서 떼낸 장기중 췌장과 신장 1개는 오랫동안 신부전증으로 고생한 이모씨(40·여)에게, 신장1개는 임모씨(31)에게, 간은 김모씨(32)에게 이식돼 삶을 잇게 했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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