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들녘 일손부족 『동동』…경남서만 3만명 모자라

입력 1998-05-26 19:28수정 2009-09-2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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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여산면 두여리에 사는 농부 한동철(韓東鐵·43)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참외를 재배하기 위해 논 3천6백여평에 설치한 27동의 비닐하우스를 아직도 철거하지 못해 모내기가 계속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모작 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당장 비닐하우스를 철거해야 하지만 일손이 달려 겨우 7동만 철거한 상태.2백평짜리 비닐하우스의 경우 한동을 철거하는데 인부 3,4명을 동원해도 한나절이나 걸린다. 한씨가 비닐하우스를 모두 철거하려면 앞으로 연인원 1백여명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한씨는 생각다못해 면사무소에 ‘일손돕기’를 신청했지만 인근 군부대에선 다음주에나 인력을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씨는 “도시에는 노숙자가 넘쳐난다는데 농촌에선 일손을 구할 수 없으니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는 지방선거까지 겹쳐 농촌인력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전북 김제시 만경면의 농민 이모씨(62)는 “도시 실직자들을 농번기 때만이라도 농촌에 투입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전북도의 경우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각 농협과 읍 면 동사무소에 일손돕기 창구를 설치했으나 선거분위기 탓인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도시의 유휴인력을 소개하는 인력중개센터를 운영할 계획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 3D업종을 꺼리는 도시 실직자들이 농사일을 기피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농사경험이 없어 농촌에 인력을 투입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다.

‘월촌수박’으로 유명한 경남 함안군 대산면 월촌리 농민들은 요즘 하루 평균 30∼70t의 하우스 수박을 수확, 출하하면서 일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곳 농민들은 한 농가의 수박을 함께 수확한 뒤 다른 농가의 일을 도와주는 ‘품앗이’에 의존하고 있다.

지금은 시세가 좋지 않아 상당수 농가가 출하를 꺼리는 바람에 일손부족 현상이 덜한 편이지만 수박이 쏟아져 나올 내달 10일부터 25일까지는 수확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마을 김모씨(41)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떠돌아 다니는 도시 실직자들이 농촌에 들어와 날품을 팔아도 괜찮을텐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경남 함안군에는 수박재배 하우스만 모두 1천9백㏊에 이르고 보리베기 모내기 등이 겹쳐 일손부족현상이 심각한 실정이다.

‘얼음골 사과’로 유명한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삼양리 얼음골 일대 사과 재배농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2백여㏊의 사과과수원에서 튼튼한 열매를 남기고 나머지는 골라 따내는 ‘솎기 작업’을 하고 농약을 쳐야 하지만 일손이 모자라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얼음골 사과 영농조합원 박순석씨(24)는 “기계화가 많이 됐지만 앞으로도 10여차례 이상 농약을 치려면 일손이 부족해 큰 일”이라고 걱정했다.

경남도는 올 봄농사에 연인원 3만명 이상의 일손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공무원과 군인 회사원 사회단체회원 등 4만2천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남 사천시 농촌지도소 관계자는 “보리베기와 모내기 등은 98% 가량 기계화됐고 대부분 농가들이 ‘위탁영농 회사’등에 일을 맡겨 영농에 차질은 없지만 과수와 시설하우스의 경우는 일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지역도 농촌 일손부족현상은 마찬가지. 특히 올해는 엘니뇨현상으로 더위가 일찍 찾아와 일손부족현상이 심해졌다.

예년의 경우 모내기와 과일솎기, 봄배추와 고추심기 등의 영농시기가 구분됐으나 올해는 때이른 더위로 과일나무 착과가 일찍되거나 배추재배 시기가 앞당겨져 한꺼번에 일손이 필요한 실정이다.

강원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에서 9천평의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이윤찬씨(48)는 과일솎기를 위해 작업인부 6명을 구하고 있으나 2명밖에 구하지 못해 영농차질이 예상된다고 걱정했다.

강원 평창군 도암농협의 경우 도시 실직자들을 농촌돕기에 활용하기 위해 문을 닫은 학교를 임대, 숙식시설까지 마련했으나 아직 찾는 사람이 없다.

이 농협 한순갑전무(51)는 “농사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일년내내 제법 일거리가 보장되는데도 도시 실직자들이 농촌을 외면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협 광주전남지역본부는 올 2월 ‘인력은행’을 설치했으나 지금까지 도시지역 유휴인력 3백50여명을 농가에 소개하는데 그쳤다.

나주원예협동조합의 경우 배 재배농가로부터 인력지원을 요청받고 4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실직자 등 2백39명을 농가에 소개했다. 무안군 청계농협도 최근 양파와 마늘 수확기를 맞아 1백여명에게 일자리를 주선했으나 농가의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나주시 왕곡면 배기선(裵基善·58)씨는 “최근 배 접과시기를 맞아 일손이 크게 달려 농협을 통해 4일동안 8명의 인력을 지원받았다”며 “그러나 40대 실직자 세명은 일이 힘들어서인지 도중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대구 경북지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경북 성주군 선남면 산부리 김규삼(金奎三·62)씨는 “배나무 열매에 일일이 봉지를 씌워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할 수 없이 ‘성주군 일손돕기 지원창구’에 도움을 청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농협조합장 이장우(李長雨)씨는 “실직사태로 인력수급이 원활해지고 인건비도 내려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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