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순 北외교관 회견]『北, 원조받으려 식량난 과장』

  • 입력 1998년 2월 18일 21시 10분


‘위는 사회주의, 아래는 자본주의’.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주재 북한대표부의 3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 4일 귀순한 김동수씨(38)는 18일 북한의 실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김씨는 북한정권 창건 후 최악의 경제난으로 사회주의체제가 마비되다보니 주민들 사이에 개인텃밭 경작, 농민시장에서의 물물교환 등을 통해 자본주의행태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흥림FAO북한대표부 대표(49)에게서 ‘중간간부들에게까지 자본주의 색채가 미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북한당국이 자본주의 사상에 물든 주민들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은 식량원조를 많이 받기 위해 피해상황이 엄혹하고 사망자가 많은 것처럼 식량난을 일부 과장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큰물피해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서 식량난 통계가 가공된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자신이 서울 도착시 북한주민 2백80만명이 아사했다고 말한데 대해 “국제기구 관계자에게서 전해들은 중국 지방언론의 보도에 대해 상관인 김대표가 ‘그럴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을 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서관히 농업담당비서가 지난해 농업 실정(失政)에 대한 책임을 지고 쫓겨난 뒤 간첩혐의로 공개처형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수십년간에 걸친 정책적 오류에서 비롯된 식량위기를 자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김씨의 전망이었다. 한편 김씨와 함께 회견장에 나온 부인 심명숙씨(38)는 “현재 평양에선 강석주(姜錫柱)외교부 제1부부장이 15분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할 정도로 유류난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또 아파트에서 욕조나 베란다 등을 이용하거나 아예 방을 축사로 전용해 토끼 닭 돼지 등 가축을 키우고 땔감으로 취사와 난방을 하는 일이 많다는 것. 심씨는 “로마에 있을 때 시장상인들이 국적을 물어오면 북한이라고 말하는 것이 창피해 남한이라고 대답하곤 했다”면서 “북한에 남은 딸(13)이 반역자의 딸로 몰려 사회적으로 버림받는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 지 걱정된다”고 눈물지었다. 김씨는 황장엽(黃長燁)전노동당비서와 장승길전이집트주재대사 형제의 잇단 망명 등으로 큰 충격을 받은데다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당국의 실정을 대표부 사람들 앞에서 비판한 것이 문제가 돼 망명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한기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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