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극 엄마가 시켜서 했어요』…중학생 아들 눈물고백

  • 입력 1998년 2월 18일 06시 48분


아, 이 서글프고 기막힌 세태. 알면 알수록 가슴 미어지는 이 열세살짜리 아이의 기구한 이야기.

이모군(13·서울 C중학교1년)이 난소종양을 앓는 가난한 엄마(박만례·35)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자살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간 것은 지난 13일. 유서내용은 세상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엄마 이제 용기를 가지세요. 엄마는 틈만 나면 살기 힘드니까 우리 함께 죽자고 하셨는데 세 식구 다 죽기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많이 벌어 엄마 병을 고쳐드리고 싶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대통령 할아버지가 우리를 도와주실거예요.

동생한테 형이 돈벌러 멀리 떠났다고 말해주세요. 사랑해요 엄마.’ 이군이 유서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얹어놓고 나무에 올라 ‘결행’할 무렵 주민 김영훈(金泳訓·44·서울 강북구 번동)씨가 이군을 발견해 구해냈다는 게 보도 내용.

가파른 경제난 속에도 방송국과 신문사에 성금이 답지했다. 아이의 ‘가냘픈 효성’에 감동한 모 병원은 무료로 어머니 박씨의 종양 제거수술을 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이 가슴 ‘찡한’ 스토리의 진상이 드러났다. 동아일보 기자가 이군집 취재과정에서 우연히 쓰레기통에 처박힌 유서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유서내용은 이미 어머니 박씨가 적은 것이었고 이군이 고스란히 베낀 것이었다.

자살 직전 이군을 발견했다는 주민 김씨는 박씨와 일시 동거도 했고 수년동안 사귀어온 관계인 것도 드러났다.

박씨와 김씨가 이군을 앞세운 ‘자살극’으로 궁핍한 생계를 면해보려 계획을 세운 것은 지난 11일. 난소종양을 앓던 박씨가 지난해 7월부터 행상을 그만두면서 쌀값마저 동이 나자 두 ‘어른’은 세상의 동정을 사기로 했다. 12일 오후 이군을 앞세워 ‘연출’한 김씨가 C중학교에 전화를 걸어 “그 학교 학생이 유서를 써놓고 산에서 목을 매려했다”고 속인 뒤 여러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제보했다.

이제 이군은 마냥 훌쩍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바보처럼…. 결국 이렇게 될 줄….”

어머니 박씨는 “모든 것을 털어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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