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의 사람 밀지 마세요. 원서는 충분합니다』
1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종합전시장에서 리크루트 주최로 열린 채용박람회 이랜드 부스앞. 이랜드 직원들이 원서를 들고 나오자 갑작스레 지원자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그 사이에는 올해 2년째 취업전쟁을 치르러 나온 박영삼(朴永三·28·부산 모대학 졸)씨도 끼여 있었다.
새벽 일찍 부산을 출발, 이날 행사장을 찾은 박씨는 구름처럼 몰려든 취업 준비생들을 보고는 겁부터 더럭 났다. 지난해 10여차례 도전했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올해 취업을 위해 9개월간 미국에 어학연수까지 다녀온 그다. 그런데도 영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아예 상반기 졸업생과 졸업예정자들만 뽑겠다는 기업들이 많아 원서조차 접수할 수가 없다. 기졸업자와 졸업예정자의 구분을 두지 않는 기업 부스를 찾아 줄을 섰지만 『올해는 취업재수생은 10%도 뽑지 않는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와 그의 어깨엔 더욱 힘이 빠졌다.
입사한 중소기업이 지난 8월 부도나면서 어쩔 수 없이 취업재수생 대열에 서게된 박원규(朴元圭)씨는 이미 6곳에나 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날 행사장을 찾았지만 「팔팔한」 졸업예정자들 틈에 끼인 자신의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94년 취업때는 중소기업이긴 했지만 골라가며 갔는데 올해는 뽑는 곳이 거의 없어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한편 새벽 일찍부터 10대의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온 지방대생들은 「취업전쟁」을 더욱 더 차갑게 실감하고 돌아갔다. 이들과 함께 올라온 부산 동서대 취업정보담당 이일수(李逸秀)씨는 『학생들에게 취업난을 실감시켜주기 위해 일부러 데려왔다』며 『지난해는 수십장씩 원서를 교부했는데 올해는 1∼2장 밖에 주지 않아 벌써 20번이나 행사장을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 예고된 가운데 이미 졸업한 취업재수생들과 지방대생은 더욱 서러운 취업시즌을 맞고 있는 것이다. 내년 2월 졸업예정자인 김경수(金京洙·29)씨도 『재학생들도 취업재수를 피하기 위해 재학중 어학연수를 가거나 휴학하는 사람이 학과마다 절반이 넘는다』고 말했다.
이날의 취업박람회 참여업체들은 준비해 온 원서가 오전에 동이나 밀려드는 취업준비생들을 맞기 위해 오후에 긴급히 회사에서 원서를 다시 가져오기도 했다.
삼환기업의 구자선 인사부장은 『매년 취업박람회에 참석하지만 올해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