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기자] 지난 1월 중순 안기부당국자는 북한문제 취재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2월초에 큰 건이 하나 있을 거요』
그것은 북한노동당 黃長燁(황장엽)비서의 망명신청이었다. 안기부는 황비서의 망명결심을 매우 일찍부터 알고 있었으며 1월중순에는 망명이 거의 「성숙」했다는 얘기가 된다.
안기부 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황비서의 망명을 위한 첫 접촉은 이번에 황비서와 함께 망명을 요청한 金德弘(김덕홍)여광무역대표와 「한국측 인사」 사이에 지난해 3월 북경에서 이루어졌다. 황비서의 심복으로 북경에 상주근무중이던 김씨는 자신과 황비서의 망명의사를 밝히며 협조를 요청했다.
당국은 김씨와 접촉한 한국측 인사가 민간인인지 당국자인지도 확인해주지 않는다. 김영진 유송일씨 가족의 밀항을 주선해주었다고 이들 가족이 말한 「남한기업인 박사장」의 신원을 아직도 확인하지 않는 것과 흡사하다.
어쨌든 한국측 인사는 김씨의 주변을 면밀히 조사했고 역공작의 가능성 등도 꼼꼼히 따졌다. 이들의 망명의사가 진실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김씨와 한국측인사의 은밀한 접촉은 급진전됐다. 급기야 지난해 7월에는 북경에서 황비서와 한국측 인사가 직접 만났고 황비서는 이 자리에서 망명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안기부 당국자가 말한 「2월초」는 황비서의 일본방문과 관련된다. 황비서의 일본방문은 1월30일부터 2월11일까지 13일간이었다. 당초 한국측 인사와 황비서가 약속한 망명의 D데이는 2월4일부터 9일까지의 사이였다고 한 고위당국자가 전했다.
그러나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망명결행 계획은 두가지 문제에 부닥쳐 이루어지지 못했다.
첫째, 일본체류중 황비서에 대한 조총련 소속 경호원들의 경호가 철통같았고 26명에 이르는 대규모 방일수행원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둘째, 사전에 일본정부의 망명협조 가능성을 간접타진한 결과 냉랭한 반응이 돌아왔다. 일본측은 △정치적 망명신청을 받아들이거나 처리해 본 경험이 없다 △북한고위인사의 망명은 일본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점 등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일본에서의 망명이 중국에서의 결행보다 사후처리에 유리할 수 있는데도 계획은 수정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황비서는 지난 11일 북경에 도착, 다음날인 12일오전 『쇼핑하러 간다』며 숙소인 북한대사관을 나가 10시5분 김씨와 함께 한국대사관 영사부를 찾아가 망명을 정식요청했다. 이날 오후 4시20분 북한으로 돌아가는 북경발 열차를 타기 직전의 마지막 기회를 움켜쥔 셈이었다.
당초 황비서가 일본에서 망명하면 적절한 경로를 통해 뒤따르기로 했던 김씨도 동반망명을 하게 됐다.
황비서는 지난 1월2일에 썼다는 서신의 끝에 『대사(大事)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비밀을 보장하고 행동계획을 면밀히 짜는 것이 중요하다』 『강을 헤엄쳐 건너 마지막으로 오르는 기슭을 옳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었다.
이 대목은 결행을 앞둔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한국측 인사에게 일을 확실히 해달라고 당부하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