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없는 나라’ 일본이 ‘정상국가’로 돌아왔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19일 단기 정책금리(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겨우 0.25%포인트 올렸을 뿐이고 절대 수치도 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미는 남다르다. 1995년 9월 이후 한 번도 넘어서지 못한 ‘0.5%의 벽’을 30년 만에 뚫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 질서와 세계 자금시장의 흐름이 요동치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자산버블 붕괴 이후 장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초저금리 기조를 이어갔다. 2016년부턴 제로금리를 넘어 이자는커녕 수수료를 내며 돈을 맡겨야 하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물가와 임금이 오르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면서 지난해 3월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고 금리 정상화를 선언했다. 지난해 7월 0.25%, 올 1월 0.5%로 금리를 올렸다. 이후 미국의 관세 정책 등을 고려해 동결을 이어가다가 경기에 끼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추가 인상에 나섰다.
▷일본이 초저금리의 종언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 자산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해 온 ‘엔화 빚투’는 타격을 받게 됐다. 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회수(청산)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엔 캐리 자금은 506조 엔(약 4800조 원)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6.5%인 32조7000억 엔(약 300조 원)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7월 말 일본은행이 깜짝 금리를 인상하고 추가 인상을 시사하자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폭락하며 ‘검은 월요일’ 충격에 휩싸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하루 만에 12.4% 빠졌고 코스피도 8.8% 급락했다.
▷구조적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엔화가 금리 인상으로 강세로 돌아서면 원화 환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최근 원화가 엔화와 함께 약세를 보이는 동조화 현상을 강하게 보여온 만큼 엔화 약세가 멈추면 원화 가치도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반면 엔 캐리 자금의 이탈로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급격히 빠져나갈 경우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이 금리 인상을 발표한 19일 코스피는 오히려 상승세를 보이는 등 증시와 환시는 대체로 평온했다. 이미 시장에선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엔화 대출 규모가 지난해부터 상당 부분 줄어들어 있어 급격한 자금 이동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금융시장 급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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