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이 12일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이 7일 자정 ‘대장동 비리 사건’ 항소를 포기한 지 5일만이다. 뉴스1
상상해 보자. ‘내란 재판’ 1심에서 무죄가 나왔는데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다면?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12·3 비상계엄 때 계엄군을 지휘한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한테 1심 재판부가 계엄 중요업무종사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돌연 항소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항소심은 형사소송법상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1심 무죄 부분이 그대로 확정된다. 요즘 끓어오르는 대장동 비리 사건의 ‘항소 포기 사태’를 들여다보고 배운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요건에 맞는다고 판단한 만큼 내란이 될 수 없다”는 변호인단 주장을 1심 재판부가 받아 무죄를 선고했다 치자. 항소 포기한 검찰은 2심에서 “내란 맞다”며 다툴 수 없다. 포기 ‘외압’까지 있었다면 나라가 뒤집어질 일이다. 검찰수장 사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12일 오후 사퇴를 밝혔지만 그 선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 이 대통령과 정진상, 무죄 가능성 커졌다
올해 2월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공상이기에 망정이지 실제 상황에선 항소 포기를 돌이킬 수 없다. 민간업자들이 7000억 원 넘는 부당 이익을 챙겼대서 배 아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민사소송으로 환수 가능하다는데 믿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공범의 무죄 확정이 후임 재판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다. 내란 중요업무종사 혐의는 전 방첩사령관 여인형, 전 국무총리 한덕수 등의 기소 혐의와 동일하다. 전 대통령 윤석열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다. 개별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한다 해도 같은 혐의에서 무죄가 나면 후임 재판부는 선례를 따를 부담이 생긴다.
이번 사태가 보통 문제가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김만배 등 민간업자들이 1심 무죄 확정을 받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는 이재명 대통령과 1심 중인 대통령의 최측근 정진상의 기소 혐의와 동일하다. 검찰 항소 포기로 이 대통령과 정진상은 향후 재판에서 무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용산과 법무부, 사법시스템 무너뜨렸나
이재명 대통령이 9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44회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번 항소 포기가 없었다면 대장동 사건은 다시 국민적 관심사가 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항소하기로 검찰 지휘부 승인까지 났는데 막판에 노 권한대행이 돌려세웠다. 그러고는 정의감에서였는지 가벼운 입 때문인지 “용산(대통령실)과 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했다”고 자백하고는 사퇴를 밝혔다(직을 던질 결기가 있었다면 항소를 한 뒤 던지든가). 어차피 내년이면 사라질 검찰청. 이젠 검란(檢亂)을 넘어 정권을 흔들 조짐이다.
용산과 법무부의 누가, 어떻게, 왜, 노만석을 괴롭혔는지는 정말이지 알고 싶지도 않다. 진실이 밝혀지는 건 이 정권 기둥뿌리가 흔들릴 때나 가능하겠지만(전임 윤석열 정권 시절 충분히 경험했다) 정권 초부터 ‘메이저 언론’이 우려했던 문제는 결국 생쥐같이 드러나곤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출입구에서 최근 검찰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 1심 선고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것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원조 찐명 정성호가 대장동 일당이 이뻐서 검찰에 ‘신중한 판단’을 강조했을 리 없다. 암만 물러날 결심을 굳혔대도 노만석이 “법무차관이 항소 포기 선택지를 제시했다”는 소리를 거짓으로 고할 리 없다. 윤석열의 ‘버럭’ 때문에 채 상병 사태의 비극이 터졌던 걸 용산에서 모를 리도 없다.
● 대장동 변호인들, 용산-법무부에서 열 일
노만석 사퇴 전, 일개 장관 정책보좌관 조상호가 “노 권한대행 중심으로 검찰이 뭉쳐야 한다”고 시건방을 떠는 상황이다. 방송가를 돌며 ‘외압’ 아닌 “너무나 당연한 의사교섭 과정”이라고 정치선전을 하려면, 이재명·정진상의 ‘대장동 변호인’출신이라고 밝히고 시작하기 바란다. 정성호가 7월 21일 장관 취임식을 하는 날, 민정수석실 행정관이던 조상호가 왜 법무장관실로 옮겼는지 이제 알겠다.
이 대통령이 9월 말 “검사들이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고, 무죄가 나오면 면책하려고 항소·상고해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고 검찰을 비판하자 정성호는 분연히 밝힌 바 있다. “국민주권 정부 출범 이후 주요 사건에 대해서 (상소 남용을 하지 않도록) 직접 지휘하고 있다”고. 그러고도 이번엔 “다양한 보고를 받지만 지침을 준 바는 없다”고 딴소리다. 대장동 변호인 출신 조상호가 놀고 먹고 있었겠나.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에도 대장동 변호인 출신 비서관만 셋이다. 국회에도 박균택 김동아 이건태 등 대장동 변호인 출신 의원들이 기세등등하다. 이들이 충성경쟁하듯 추진하는 ‘형법상 배임죄 폐지’가 대장동 항소심 재판 중 성사되면, 이 대통령은 후련해질 것이다. 면소 판결을 받거나 검찰이 공소를 취소할 공산이 크다. 사법리스크는 해방이되 사익을 위해 나라를, 제도를,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 항소 자제? 외압-방탄 문제 아니면 ‘미쳤제(지)’
여당에 ‘재판중지법’ 제동을 건 이 대통령한테 잠시 감동했었다. 대장동 1심 판결은 10월 31일, 재판중지법 발언은 3일, 항소 포기는 7일이다. 만일 검찰의 항소를 포기시켜 손 안대고 사법리스크를 털어낼 작정이었다면, ‘정청래의 민주당’도 손 한번 볼 작정으로 그리했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대통령의 신뢰리스크도 회복할 길이 없다.
집권세력은 정권이 흔들릴 이번 사태를 놓고 항소 포기 아닌 ‘항소 자제’라고 주장했다. 노만석 사퇴를 보고도 그런 소릴 할 텐가. ‘□□ □제’에 맞추고 싶었는지 국힘의힘 원내대표 송언석은 ‘재판 삭제’라고 받았다. 검찰에선 ‘검찰 억제’라고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엔 ‘외압(또는 윗선) 문제’로 번질 듯 같다. 이 대통령의 ‘방탄 문제’가 명백해서다. 이 대통령이 법정에서 “한번 안아보게 해달라”고 했던 정진상에게는 계속 입다물어 달라는 ‘처벌 면제’신호일 수도 있다.
국힘 대표를 지낸 한동훈은 ‘이재명’ 이름이 없는 사건에서 만일 어떤 검사가 대장동 사건처럼 항소 포기했다면, 법조계에선 돈 먹었거나 빽 받았거나 미쳤거나 셋 중 하나로 본다고 했다. ‘□□ □제’ 돌림으로 바꿔 봤다. ‘돈 받았제(지)’ ‘빽 받았제(지)’ 세 글자로 하면 ‘미쳤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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