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북 불법송금 사건, DJ-이재명의 평행이론

  • 동아일보

2020년 6월 15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오찬을 하며 대화하는 모습. 그러나 이 회담 대가로 현대가 정부 몫의 1억 달러를 대납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동아일보 DB
2020년 6월 15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오찬을 하며 대화하는 모습. 그러나 이 회담 대가로 현대가 정부 몫의 1억 달러를 대납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세상에 충격을 안겼다. 동아일보 DB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대북 불법송금도 2000년 6월 김대중(DJ) 대통령-김정일 남북정상회담 직전 존재했음이 지난번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관련 ‘도발’을 쓰면서 뒤늦게 떠올랐다(‘김부겸이 옳다…대구가 디비져야 보수가 산다’). 그러니까 어떤 의도를 갖고 불법송금 특검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아니란 소리다.

공교롭게도 현재 이름도 비슷한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을 놓고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활동이 요란하다. 이번 송금의 진상은 아직 모르지만 과거 송금의 진실을 우리는 안다. 등장인물은 달라졌어도 권력의 속성은 거기서 거기다. 그때 그 사건이 가물가물한 바쁜 독자를 위해 간단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김대중 정부 대북 송금 의혹의 특별검사 수사 결과 발표를 다룬 동아일보 2003년 6월 26일자 신문.
김대중 정부 대북 송금 의혹의 특별검사 수사 결과 발표를 다룬 동아일보 2003년 6월 26일자 신문.
① 대북송금 5억 달러 중 정상회담 대가 1억 달러는 현대가 대납했다.
② DJ는 모든 걸 보고받았다.
③ 그럼에도 DJ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5년에도 “북한에 돈을 줬다는 것은 하나도 안 나타났다”고 했을 정도다.

● 언론과 야당은 감시와 견제-권력은 부인

2003년 2월 대통령 퇴임 직전 DJ는 대국민 사과 및 회견에서 대북송금을 보고받았고 위법성도 알았지만 승인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2월 대통령 퇴임 직전 DJ는 대국민 사과 및 회견에서 대북송금을 보고받았고 위법성도 알았지만 승인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2년 9월 26일 국정감사장.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엄호성 의원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정부가 현대 계열사를 통해 4억 달러를 북한에 비밀리에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세기의 회담이 돈 주고 산 것이었다니! 2002년 3월 미 의회조사국(CRS) 래리 닉시 선임연구원은 현대가 북한에 몰래 보낸 웃돈 4억 달러가 군사비로 전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월간조선이 그해 5월호에 보도했지만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야당이 국회에서 이를 공식 제기함으로써 나라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불리하면 일단 부인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북과 접촉했던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은 단 1달러도 북에 준 적 없다고 펄쩍 뛰었다. 그래도 그때는 대출 외압설을 세상에 알린 엄낙용 산업은행 총재 같은 양심적 공직자가 있었다. 야당이 양적 질적으로 지리멸렬하지 않았다는 점은 더 중요하다. 만일 지금 같았다면? 사실이 그냥 묻히고 말았을 거다.

● 그때도 여권은 특검 수사를 공격했다
2003년 6월 15일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당시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대북 송금 의혹 특검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3년 6월 15일 한국대학생총연합(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당시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대북 송금 의혹 특검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패했지만 151석의 다수당이었고 기세도 살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2003년 2월 26일 그들은 새천년민주당(103석)이 불참한 가운데 대북송금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DJ와 호남, 민주당은 대통령 거부권을 주장했지만 노 대통령은 “국민이 밝히라면 밝히는 게 도리”라며 ‘제한적 특검’을 수용했다. 심지어 민정수석 문재인도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에) 관여한 바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책임져야죠”라고 신동아 인터뷰에서 말했다(이는 친노-호남 갈등의 뿌리로 작용하게 된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 뒤 DJ와 손잡고 단상을 내려오는 모습. 다음날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특검’을 국회 통과시켰고 DJ는 끝까지 반대하고 비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 뒤 DJ와 손잡고 단상을 내려오는 모습. 다음날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특검’을 국회 통과시켰고 DJ는 끝까지 반대하고 비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월 송두환 특검이 출범했다. 최대 관건은 DJ가 어디까지 개입했느냐다. 대통령 퇴임 전 DJ는 대국민사과를 하긴 했다. “현대가 대북사업 대가로 5억 달러를 북한에 송금한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현대 관련 보고를 ‘잠깐’ 들은 기억이 있다”고 분명히 답했던 것이다.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7개 사업권을 얻었고 정부는 평화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했다”고 위법성 역시 인정했다.

그럼에도 특검을 공격하는 여권의 모습은 꼭 지금을 보는 듯하다. 민주당 원내총무는 특검 수사가 사법적 테러라고 했다. 이해찬 등 민주당 의원 30여 명은 “실정법 잣대로 재선 안 된다”고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노 대통령도 “특검 수사가 남북정상회담의 가치를 손상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수사 중인 특검에 정치권이 관여하는 것은 수사방해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동아일보에 그렇게 지적했던 사람이 현재 국민통합위원장인 이석연 변호사였다.

● 대법원 유죄 판결 나와도 인정 못했던 DJ
DJ는 대북송금 사실을 미리 보고 받았음을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한 동아일보 2003년 7월 5일자. 이는 특검 수사 발표 때는 나오지 않은 내용이었다.
DJ는 대북송금 사실을 미리 보고 받았음을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한 동아일보 2003년 7월 5일자. 이는 특검 수사 발표 때는 나오지 않은 내용이었다.
2003년 6월 25일 특검팀은 결과를 발표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DJ 정부가 부담키로 한 1억 달러를 현대가 대납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현대가 송금한 나머지 4억 달러 역시 명목은 경협 사업권 획득이되 실제는 정상회담 대가라고 했다. 특검팀은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사실을 보고받았음을 확인했으나 위법행위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포착하지 못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열흘 만에 드러났다. DJ는 대북송금의 불법성을 보고받고도 사실상 묵인했다는 관련 인사 진술이 나왔음을 동아일보 취재팀이 수사기록에서 확인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DJ는 어떤 조사도 받지 않았고, 기소 또한 되지 않았다.

현대아산 회장 정몽헌은 그해 8월 어마어마한 빚과 슬픔을 떠안고 이승을 떠났다. 2004년 대법원은 “통치행위를 인정한다 해도 절차를 어기고 북한에 송금한 행위 자체는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며 관련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했다.

그럼에도 DJ는 특검에 대한 비난을 그치지 않았다. 2005년 2월 MBC 라디오 인터뷰에선 “대북송금(특검)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며 “실제 (수사)해보니까 국민의 정부가 북한에 정상회담 하기 위해서 돈 줬다는 것은 하나도 안 나타났잖아요. 아니라는 건 특검도 인정했거든요”라는 황당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DJ는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나왔는데도 사실 자체를 인정 못했던 것이다.

● 쌍방울 대북송금과 절대 비교하지 말기를
더불어민주당이 2월 27일 강행한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진상규명 및 공소취소를 위한 국정조사 추진위원회’ 1차 회의. 과거 대북송금과 이름도 비슷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의 의 ‘조작기소’ 문제가 지금 뜨겁게 불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월 27일 강행한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진상규명 및 공소취소를 위한 국정조사 추진위원회’ 1차 회의. 과거 대북송금과 이름도 비슷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의 의 ‘조작기소’ 문제가 지금 뜨겁게 불타고 있다.
20여 년 전과 이름도 비슷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나라가 들썩인다.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이화영이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공모해 경기도가 북한에 주기로 약속한 스마트팜 사업비용 500만 달러(약 66억 원)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방북비용 300만 달러(약 39억 8000만 원)를 쌍방울이 대납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작년 6월 5일 대법원은 징역 7년 8개월의 원심을 확정했다.

그가 연어·술파티와 진술 조작이란 것을 처음 주장한 때가 2024년 4월이었다. 이미 2023년 6월 “이 지사에게 대북사업을 보고했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는데 마침내 ‘조작 기소’가 탄생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2025년 대선 이틀 뒤, 대한민국 대법원은 북한에 건너간 쌍방울 자금 일부가 이 대통령의 방북 비용이었다고 인정했던 것이었다(물론 이 대통령은 제3자 뇌물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재판은 모두 중지돼 있다).
2023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방북비 대납을 알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진술이 보도됐다.
2023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방북비 대납을 알았을 것이라는 취지의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진술이 보도됐다.
그리고…세상은 바뀌었다. 야당은 형편없다. 내란-김건희-채상병 사건을 또 수사한다는 2차 종합특검은 최근 쌍방울 대북송금에서 윤석열 정권의 수사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며 “국가권력에 의한 초대형 국정농단 의심 사건”으로 본다고 (결론부터 미리) 밝혔다.

과거 DJ는 모든 걸 보고받았지만 특검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 의혹은 그 시절 대북송금과 전혀 상관없다고 믿는다. 절대 비교하지 마시기를.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 회담 및 오찬에서 손을 맞잡으며 웃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민생경제협의체 회담 및 오찬에서 손을 맞잡으며 웃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대북송금#김대중#이재명#남북정상회담#대법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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