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 열리는 국회 국정감사는 정기국회의 꽃으로 불립니다. 국회가 정부 정책이나 예산 집행 등을 감사하는 국정감사는 입법 행정 사법이 서로 견제토록 한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을 구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국정감사를 ‘1년 농사’라 일컬으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임하는 이유입니다. 여의도 현장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는 동아일보 정치부 정당팀 기자들이 국감의 속살을 가감없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요즘 다 휴직을 갔거든요. 힘드니까 휴직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휴직을 해서 사람이 너무 없어요.”
“예전에는 이렇게 힘들어도 ‘본부에서 일을 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탈출하고 싶어요.”
국민의 몸과 마음 건강을 책임져야 할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들이 정작 본인들의 정신건강을 보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복지부는 5~10월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과 함께 소속 공무원 47명을 대상으로 마음건강 진단 심층면접을 진행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이 그 결과를 제출받았는데, 곳곳에서 심각한 위험신호가 감지됐습니다.
● ‘갈아넣기’와 ‘탈출’의 악순환
응답한 공무원들이 입을 모아 지목한 정신건강 악화 사유는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업무 과중이었습니다. 한 응답자는 “코로나 때도 그랬고 큰 현안이 터지면 사람을 더 뽑거나 조직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직원들한테 겸임 업무를 막 줘요. ‘일단 하고 봐’ 이런 식이죠. 저희끼리는 ‘직원을 갈아 넣는다’고 표현해요”라고 했습니다. 다른 직원도 “돌아가면서 차출이 되다 보니까 그냥 소진이 되는 거예요. 부품처럼…”이라고 했습니다.
복지부 직원들의 업무 과중은 통계로도 드러납니다. 백 의원실에 따르면 복지부 소속 공무원 수는 860명으로 타 부처 평균 737명을 살짝 웃도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복지부가 한 해 다루는 예산은 122조 원 규모로 타 부처 평균(30조 원)의 4배에 이릅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출생 고령화 추세와 복지 정책 강화로 복지부가 맡아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추가 인력을 배정받기는 어렵다 보니 한 명 한 명이 맡아야 할 업무 부담이 점점 커지고, 직원들의 소진도 심해진다”고 했습니다. 코로나19와 의대 증원 논란 등 최근 몇 년 사이 복지부가 주무를 맡아야 하는 대형 현안이 연달아 터진 것도 업무량 증가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업무가 과중되니 휴직 또는 퇴직을 하는 공무원이 늘고, 남은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도 문제로 드러났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다른 부처로 ‘탈출’했다고 털어놓은 한 복지부 공무원은 연구진이 “선생님도 원하시느냐”고 묻자 “갈 수 있다면요”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응답자도 “힘들면 휴직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정말로 아파요. 정신적으로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누가 한 명 휴직을 한 뒤에 회사(복지부)를 그만둔다든지 이런 것들도 많아요”라고 했습니다. 백 의원실에 따르면 복지부의 정원 대비 휴직자 비율은 17.4%로, 타 부처 평균 11.3%을 크게 웃도는 실정입니다.
동아일보 DB ● 복지부 “인력 243명 증원 요구할 것”
복지부가 심층 면담과 함께 수행한 양적 연구(설문조사)에서도 직원들의 정신건강 위험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원 642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우울 △불안 △불면 △소진 등 4개 영역 중 최소 1개 이상에서 위험군에 해당되는 비율이 74.9%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업무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소방공무원의 위험군 해당 비율이 43.9%였던 것을 감안하면 복지부 공무원들의 정신건강이 훨씬 더 나쁜 것으로 풀이됩니다.
복지부는 14일 국정감사에서 백 의원으로부터 이 같은 직원 정신건강 실태에 대한 지적을 받고 “종합감사 전까지 조치사항을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복지부는 28일 백 의원에게 “행안부 등과 (인력 증원을) 협의하겠다”면서 “총 243명 증원을 요구하겠다”고 보고했습니다. 또 △지역필수의료정책실 신설 △의료돌봄연계조정관 및 통합돌봄정책국 신설 등 조직 확대 계획도 요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 백종헌 의원실 제공백 의원은 “2020년부터 복지위 활동을 하며 지켜본 결과, 복지부 직원들은 코로나19와 이태원 참사, 의대 증원 등 본인 업무 외에도 기본적으로 몇 개 업무를 더 겸직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지키는 사람들이다.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국민들의 ‘정신건강과 행복’을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정은경 복지부 장관이 직접 앞장서서 복지부 증원과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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