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위비 또 압박…‘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문구도 빠져

  • 뉴시스
  • 입력 2020년 10월 15일 16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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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SCM서 에스퍼 "美납세자 불공평 부담 안 돼"
방위비 인상 요구하며 주독 미군 감축 선례 우려
국방부 "병력 감축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선 긋기
외교부 "방위비 협상서 주한미군 감축 거론 없어"

올해 주한미군 주둔에 필요한 방위비 분담금을 결정하는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미국이 또다시 방위비 증액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예년과 달리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라는 문구가 빠지면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지렛대로 방위비 증액을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병력 감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며 주독 미군 감축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서욱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14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청사에서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갖고, 방위비 문제를 포함한 국방 현안을 논의했다.

한미는 지난해 9월 11차 SMC 체결을 위한 방위비 협상을 시작해 7차례의 공식 회의를 진행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 3월 말에는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 내면서 타결 직전에 이르렀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막판에 제동을 걸면서 좌초됐다.

당시 한미는 지난해 분담금(1조389억원)보다 13% 가량 인상하고, 협정 주기는 5년으로 확대키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분담금보다 50% 인상된 13억 달러 수준을, 우리 정부는 13% 인상안이 마지노선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한미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에서 방위비와 관련해 “양측은 협정 공백이 한미동맹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공평하고 공정하며, 상호 동의 가능한 수준에서 조속히 타결돼야 할 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방위비 협상에서 한미가 지속적으로 공감해 왔던 내용과 동일하다. 하지만 에스퍼 장관의 모두 발언은 물론 공동 성명 문구를 놓고,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을 거론하며 증액을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에스퍼 장관은 모두 발언에서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우리는 공동의 방어를 위한 비용을 조금 더 공평한 방법으로 분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미국 납세자에게 불공평하게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한 다른 동맹과 함께 집단 안보를 위해 조금 더 기여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지난해 51차 SCM 공동성명에는 “에스퍼 장관은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해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적시했지만 올해는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공동성명에는 “에스퍼 장관은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이 조속히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협정 공백이 동맹의 준비태세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주목했다”고 했다. 압박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SCM 직후 취재진과 만나 “병력 감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표현은 바뀌었지만, 비약해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병력 숫자보다는 방위공약 차원의 문제로 대비태세에 문제가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15일 정례브리핑에서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협상 연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방위비 협상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는 전혀 거론된 바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거론하면서 방위비 증액을 압박해 왔다는 점에서 우려는 여전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독일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편성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예산 분담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주독미군을 1만2000명 가까이 감축하는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에스퍼 국방장관은 장기적인 전략에서 미군 재배치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돈을 안 내기 때문에 병력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향해서도 ‘부자 나라’라고 지칭하면서 “한국을 보호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증액을 요구해 왔다. 과거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협상에 높은 관심을 가지면서 직접 협상을 챙기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한미군 감축 의제 역시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미는 지난 6월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무급휴직 중단에 합의한 후 넉 달째 별다른 협상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무리한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 역시 서둘러 협상 타결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이로 인해 외교가에서는 미 대선 이후 방위비 협상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누가 당선되든 방위비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증액 폭은 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 측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동맹 비용 요구를 비판하고 있는 만큼 무리한 증액 요구를 완화할지도 주목된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상호 수용 가능한 합리적 수준의 분담을 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며 “미국 내 정치 일정과 무관하게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이 타결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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