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는 “규제혁신”, 관료는 ‘복지부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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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양식-신고절차 등 민생 규제, 법 안고쳐도 개선 가능한데 뒷짐
각 부처 규제혁신 과제 942건 중 225건은 데드라인 넘겨 지지부진

유전자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A기업은 소비자가 병원 등이 아닌 비의료기관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소비자 의뢰 유전자 검사(DTC·Direct To Consumer) 전문 업체다. 3년 전부터 기술 개발과 인력 투입을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했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피부 진단, 탈모 검사, 친자 확인 등 12개 항목을 제외하고 당뇨병이나 암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비의료기관에서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규제 때문이다.

정부는 수년 전부터 이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의료계의 반발로 아직도 성사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법 개정안 발표 시한을 올 4월로 정했다가 12월로 연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정한 규제혁신 과제 넷 중 하나는 이미 ‘데드라인’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는 이해관계자의 반발이나 정치권 이견 등 까다로운 문제가 없어 정부 부처가 조금만 신경 쓰면 가능한 규제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규제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관료들은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규제개혁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무조정실이 운영하는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정부가 선정한 942개 규제혁신 과제 중 23.8%에 이르는 225건이 완료 예정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192건은 관련 부처들이 관련 단체 의견 수렴 등을 통해 관련 법령의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히고 있다. 나머지 33건에 대해 부처들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심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법령 개정 없이 유권해석만으로 고칠 수 있거나 서류 제출이나 신고 절차 간소화 등으로 국민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수 있는 규제가 적지 않지만 이조차 제때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들의 규제혁신 추진 속도가 떨어지면서 전체 규제 건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신설되거나 강화된 규제 건수는 2009년 855건, 2013년 1099건, 2016년 1454건 등으로 크게 늘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행령 개정, 가이드라인 제정 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규제혁신 과제도 많다”며 “공무원들이 행정편의주의에 빠져 방치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최혜령 기자
#규제혁신#관료#복지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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