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어제 의원총회에서 “12월 2일 또는 9일에 탄핵안을 처리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국회 가결 이후 헌법재판소가 두세 달 안에 탄핵 결정을 내리면 내년 3, 4월 ‘벼락치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탄핵을 회피하는 꼼수로 보인다는 비박(비박근혜) 의원들의 항의에 정 원내대표는 “탄핵 절차를 피해선 안 되고 당론으로 탄핵 표결을 반대하지도 않겠다”며 물러섰다. 그러나 친박(친박근혜)계가 조직적으로 저항해 탄핵 표결이나 일정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 원내대표 주장대로 탄핵 일정에도 ‘질서 있는 국정 수습’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대선주자들을 검증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최대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해 온 친박이 아니라면 탄핵 일정을 늦추자는 정 대표 주장에 누가 동의할지 모르겠다.
22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이정현 대표와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중진들이 요즘 매일 회의를 열고 당내의 탄핵·탈당 움직임을 막느라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 등 지도부가 한사코 사퇴를 거부하는 것도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친박은 폐족(廢族)이 되고 일부는 구속당하는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워서일 것이다. 이번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도가 창당 후 최저치인 12%로 떨어져 민주당(34%) 국민의당(16%)에 이어 3위로 전락한 것도 ‘좀비’처럼 새누리당 권력을 부여잡고 있는 친박 탓이 크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마음속에서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을 ‘대통령 위의 대통령’처럼 모심으로써 헌법과 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질서 있게 징치(懲治)하는 방식이 탄핵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는 분명한 탄핵 사유다. 기왕 탄핵을 추진키로 한 이상 다소의 부작용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탄핵과 개헌을 연계시켜 ‘거래’를 하려는 것도 정략으로 비친다. 일단 탄핵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고 난 뒤 개헌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별도로 추진하면 될 일이다.
오늘 예정된 5차 촛불집회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총에선 “조기 탄핵을 반대하면 새누리당은 촛불시위 국민의 발아래 깔려 죽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새누리당은 탄핵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적극 협조하는 것이 그나마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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