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보는 후배 외교관들의 시선 “조마조마”vs“올것이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15시 41분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뭐라 말하기 참 어렵다.”(주미대사관 외교관 A씨)

5박6일 방한 기간 동안 충청권 맹주인 김종필(JP) 전 총리까지 만나는 등 거침없는 대선 행보를 하고 30일 출국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외교부 엘리트 그룹으로 ‘제2의 반기문’을 꿈꾸는 미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 후배 외교관들이 반 총장의 대선행보를 보는 표정과 시선은 복잡해 보였다. 반 총장의 정치 행보가 어떤 결실을 거두냐에 따라 외교관들에게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외교부 북미국장을 비롯해 두 차례 워싱턴에서 근무한 미국통인 반 총장은 워싱턴을 방문할 일이 있으면 종종 주미대사관 직원들을 만날 정도로 ‘대미라인 직계 후배’들을 챙겼다. 반 총장은 지난해엔 자신이 정무공사 시절(1992~1993년) 정부가 사들여 아직도 정무공사 관저로 사용하고 있는 주택(메릴랜드 주 포토맥 소재)을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방문해 워싱턴 근무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미대사관의 중견 외교관 B씨는 반 총장의 대선 행보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반 총장이 한국 외교관으로서 최고 자리까지 올라갔고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지금처럼 위인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씨는 “나도 외교관이지만 정치의 영역은 외교와 다른 면이 있지 않느냐. 정치권의 검증 공세에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시선도 있었다. D씨는 “반 총장은 워싱턴에서 후배들을 만나면 외교 비화 같은 ‘무용담’이나 유엔에서 돌아가는 이야기를 굉장히 신나하면서 들려줬다. 그 때마다 승부욕 같은 게 느껴졌다”며 “언젠가는 출마하겠구나 생각했는데 방한 기간 행보를 보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의회에서 당국자를 만나면 종종 반 총장의 대선행보에 대한 질문도 받는다고 한다. E씨는 “알고 지내는 미측 인사가 얼마 전 ‘반 총장이 한국에서 대선 출마설에 기름을 부었다는 데 사실이냐’고 물으며 관심이 많더라. 외교관 입장에서 뭐라고 답하기 좀 난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북제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등 여전히 한미 간 주요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반 총장의 대선 행보가 양국 사이의 큰 이슈가 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F씨는 “안 그래도 이코노미스트 등 해외 언론에서 반 총장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않은데 총장 임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대선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은 외국인들에게 일종의 ‘도덕적 해이’로 비쳐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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