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대상 北선박 영해통과 팔짱낀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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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선적 ‘오리온스타’ 남해 통과… 해경, 정선 명령 없이 밀착감시만
“위법 첩보 없으면 검색 못해” 해명… ‘北 화물 전수조사’ 실효성 의문

유엔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선박이 17일 오후 경남 남해안 해역에 진입하자 해경이 경비함정 2척을 긴급 출동시켜 외교부의 대응 지침에 따라 밀착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박의 화물 검색 명령은 내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해경 제공
유엔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선박이 17일 오후 경남 남해안 해역에 진입하자 해경이 경비함정 2척을 긴급 출동시켜 외교부의 대응 지침에 따라 밀착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박의 화물 검색 명령은 내리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해경 제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한 이후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선박이 17일 처음으로 한국 영해를 통과했다. 당국은 경비정을 보내 이 배를 감시했지만 정선, 검색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해경은 이날 “북한이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오리온스타’호가 오전 11시 45분경 여수해경 관할 해역에 들어와 동해로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이 배는 몽골 선적으로 15일 북한 남포항을 출발했으며 20일 청진항에 입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영해에 들어왔어도 위협이 없거나 구체적 범법 사실에 대한 첩보가 없으면 검색할 수 없다”며 경비정 508함 등 2척을 출동시킨 뒤 밀착감시만 했다. 이는 대북제재로 ‘북한 화물 검색이 의무화됐다’는 종전 정부 설명과 달라 주목된다.

정부는 안보리 결의 2270호가 채택된 뒤 “북한발(發), 북한행(行) 화물에 대한 전수조사가 의무화돼 북한의 금지품목 거래를 전면 봉쇄하게 됐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오리온스타호는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원양해운관리회사(OMM) 소속 31척 가운데 하나이고 남포를 떠나 청진으로 가는 배인 만큼 명백한 의무조사 대상이다. 하지만 해경은 “제재 대상 선박이라 해도 편의치적(便宜置籍·선박을 자국이 아닌 제3국에 등록)이면 구체적인 혐의 없이는 검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선박 등록 국가로부터 항의나 소송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8일 독자 대북제재(북한 기항 선박의 180일 내 국내 입항 금지 등)를 발표하면서 “북한이 편의치적을 제재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북한 선박의 한국 영해 통과에 따라 정부가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라며 북한의 모든 물류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해온 대북제재 결의 2270호의 허술한 속살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제재 대상인 북한 선박이라도 항구에 입항하지 않는 이상 해상에서 검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것. 국제해양법상 상선은 타국의 영해도 통과할 수 있는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을 보장받고 있다. 오리온스타호는 이날 한국 조치의 무력함을 알고 있는 듯 한동안 끄고 있던 선박자동식별장치(AIS)도 켠 채 유유히 남해를 지나갔다. 이와 달리 필리핀이 결의 2270호 채택 직후 OMM 소속 선박인 진텅호를 수색해 화물을 몰수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 항구에 입항했기 때문이다.

2389t급 화물선인 오리온스타호는 한국 해역을 지날 때 북한 선원 20여 명이 승선했고, 무연탄 3600t을 싣고 있었다. 이 배는 한동안 태평양국가인 키리바시에 선적을 뒀고 ‘리치오션’이라는 이름을 썼다. 하지만 국제해사기구(IMO)에 등록된 고유번호(9333589)로 식별이 가능하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
#북한#유엔#안전보장이사회#대북제재#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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