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는 11일 내년 4월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 협상을 이틀째 벌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양측 모두 법정시한 준수를 외치면서도 각자의 주장만 고집하는 ‘동상이몽’인 셈이다. 그 핵심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논란이 있다.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인구비례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지역+비례)를 먼저 정한 뒤 그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 與, ‘권역별 비례대표는 반(半)역적’
새누리당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는 금기어라고 한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하면 내년 4월 총선 이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탓이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당시 전체 300석 중 152석을 얻으며 과반수를 확보했다. 정당 지지를 가늠할 수 있는 비례대표 득표율(42.8%)보다 풍성한 성과를 거둔 것. 선거구에서 1명만 당선되는 승자 독식의 소선거구제에 더해 정당 지지에 따른 비례대표 몫을 동시에 챙겨서다. 그런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19대 총선 기준으로 42.8%에 해당하는 의석을 얻게 돼 과반 의석이 무너지게 된다.
제3정당이 7%의 지지(득표율)만 받아도 원내교섭단체 요건인 20석을 넘기게 돼 새누리당은 여야 협상에서 또 다른 걸림돌을 맞을 수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유권자 지지 성향을 ‘여권 45%, 야권 55%’의 구도로 본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야권에 유리한 의석 분포가 형성되며, 이는 곧 집권 4년차 박근혜 정부의 급속한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다.
선거구 획정 협상 참석자인 한 의원은 “이 같은 문제 때문에 권역별 비례대표는 도저히 받을 수 없다”며 “물꼬를 터주는 순간 여권에서는 반(半)역적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 野, ‘안 되면 21대 총선에서라도 꼭’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절실한 정치개혁 과제라고 말해왔다. 호남에서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영남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싹쓸이’하는 지역주의 해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오픈프라이머리보다 100배 정도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표가 권역별 비례대표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지역구 의석을 소폭 늘리기로 여야 지도부가 합의했다는 소문이 도는 상황에서 비례대표 의석만 줄어든 채 선거구 획정 협상을 마무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히 지역주의 타파에서 더 나아가 다당제를 위해서라도 권역별 비례대표가 필수라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강한 신념도 문 대표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문 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가 안 된다면 석패율제 도입도 괜찮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석패율제는 지역구 출마자를 비례대표 후보로 이중 등록해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것. 영남에서 새정치연합 후보의 당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문 대표가 바라는 ‘동진(東進)’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난관은 지역구가 축소될 호남 농어촌 의원들의 강한 반발이다. 호남지역의 반(反)문재인 정서가 확산 일로인 상황에서 진퇴양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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