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유산 등재 논란, 방향이 틀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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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를 둘러싼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외교부가 등재를 저지하거나 등재가 되더라도 ‘강제노동’이라는 말을 명기했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 등재결정문에 쓰인 ‘강제노동’이란 표현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나서 곧바로 부정하고 있는 문제다. 논란은 두 가지지만, 후자도 결국은 외교부가 빌미를 줬기 때문에 모두 외교부의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일관되게 ‘잘한 협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5일 밤 기자회견에 이어 9일 관훈클럽토론회에서도 “우리의 정당한 우려를 충실히 반영했으며, 많은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냈다”고 자평했다. 그러다보니 일부 언론은 협상 내용과는 별도로 “자화자찬이 심하다”거나 “황당하다”는 표현으로 외교부의 태도까지 비난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에 따라, 입장에 따라, 매스컴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더욱이 일본 문제는 논리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다만 기자는 외교부가 잘못했다면 얼마나 잘못했는지, 일본의 태도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최근의 논란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우선 외교부의 잘못에 대한 논란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외교부가 ‘예상보다는 선전했다’고 평가한다. 일본은 유산 등재를 위해 2009년부터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 이에 비해 우리 외교부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대응도 늦었다. 그러다보니 밀린 숙제하듯 이 문제에 매달렸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까지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100m 프로육상선수가 출발이 늦었는데 기록은 비교적 좋았다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상황이 비슷하다. 출발이 늦은 것을 연습부족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기록’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번 합의가 ‘비교적 좋은 기록’이라는 근거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정당한 의문이다. 몇 가지 근거 중에 우선 일본이 이 합의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 방증이다. 등재가 결정되는 순간, 일본 대표단은 웃지도 않고 박수도 치지 않았다. 일본 국내에서도 일본이 너무 많이 양보를 했다거나, 외교를 제대로 못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비난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스타트라인을 일찍 떠났던, 그래서 버거운 상대였던 일본의 이런 반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게 일본의 엄살이라고 한다면, 제3국의 시각은 어떤가. 마리아 뵈머 세계유산위원회(WHC) 위원장(독일)은 등재결정 방망이를 두드린 후 “한일 양국에 사의를 표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그리고 최근 며칠간, 우리는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목도했다. 신뢰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통화(通貨)’다.” 즉, 한일 양국이 다 잘했다는 의미다. 외국의 시각을 객관적으로 반영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등재를 둘러싼 양국의 전방위 압박 외교에 세계유산위원회의 19개 회원국들(한국과 일본 포함 21개국)은 대단히 불편해하고, 곤혹스러워했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가 100% 맞고, 일본이 100% 틀리다는 주장은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이 이 정도나마 굽히고 들어온 것도 외교부만의 힘이 아니다. 강제노동 사실을 포함해 등재 대상의 모든 역사(full history)를 기록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가 결정적이었고, 대통령의 정상외교와 친서, 국회의 결의와 의원외교, 국제사회의 압력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이런 사정 때문에 등재가 결정된 직후에 한국이 ‘역전 판정승’을 거뒀다고, 비교적 후한 평가를 한 언론도 있었다. 또한, 일본이 그렇게 인정하기 싫어한 ‘강제노동’ 사실을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최근 몇 년간 불편한 관계였던 한일이 표대결을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뤘다는 평가도 지지를 받았다. 적절한 평가이고, 이 평가는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일본이 곧바로 “강제노동 사실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결정문을 부정하고 나선 데 있다. 그러자 외교부는 또다시 비난의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교부가 일처리를 매끄럽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견 수긍이 가지만, 이런 주장은 평가의 시점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재탕 비난’이며, 더 큰 책임이 있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 대표인 사토 구니(佐藤地) 유네스코대사는 등재를 전제로 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연설에서 분명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동했으며(against their will and forced to work under harsh conditions”라고 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9일자 동아일보 칼럼에서 “보통 생각하면, 이는 ‘강제 노동’에 대한 요약 설명이라고 말해도 틀림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도 관훈클럽토론회에서 “한일이 합의한 것은 영어본이고, 일본 대표가 발언한 내용도 영어본이고, 의장이 공식적으로 선언했듯이 회의의 정본도 영어본이다. 영문본에 충실하면 아무런 오해가 없다”고 했다. 즉 강제노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자는 ‘forced to work’의 일본어 번역문에 대한 일부 한국 언론의 해석도 오해가 있다고 본다. 일부 한국 언론은 일본이 ‘forced to work’를 ‘働かされた(하타라카사레타)’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일하게 됐다’라는 의미여서 강제성이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하게 됐다’라는 의미로는 ‘働かされた’가 아니라 ‘働くようになった(하타라쿠 요우니 낫타)’ ‘働くことになった(하타라쿠 고토니 낫타)’라고 해야 맞다. 즉 ‘働かされた’는 ‘강제노동(强制勞動)을 당했다’고 쓰는 것보다는 물론 의미가 약하지만 ‘원치 않는 노동’이라는 뜻은 들어있다. ‘노역을 당했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다. 납득하기 어려운 비판은 모자람만 못하다. 그것 말고 일본의 잘못은 따로 있다.

일본의 잘못은 근본적으로 ‘부(負)의 역사(negative heritage)’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퇴행적 역사관에 있고, 이번에는 그 바탕 위에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하에서 일을 한 것’이 ‘강제노동’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논란에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에 이어 10일에는 아베 신조 총리까지 가담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forced to work’는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징용된 경우도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즉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본이 인정한 강제징용을 한 경우도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또 “강제노동을 부인한 기시다 외상의 발언에 대해 한국정부가 이의를 제기하자 않았다”고도 했다. 마치 일본의 주장이 맞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두 가지를 나눠서 살펴보자. 아베 총리의 말이 맞다면, 강제징용은 있었으나 강제노동은 없었다는 뜻이 된다. 모순이다. 강제징용된 사람의 노동행위는 강제노동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일본 학계에도 강제노동에 관한 연구가 꽤 축적돼 있다. 이 문제에 정통한 도노무라 마사루(外村大) 도쿄대 교수는 “의사에 반한다는 것은 강제를 했다는 것. 말장난은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다”(아사히신문 8일자 사설에서 재인용)고 했다.

다음으로 한국 정부가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문제. 외교부는 “이미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중요한 것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약속한 대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가 기시다 외상이나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응하지 않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외교부가 일본의 움직임에 정면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손해라는 판단을 했다면 존중해야 한다. 축구경기에서 우리가 이미 골을 넣었는데, 일본팀이 감독(아베 총리)까지 나서 골이 아니라고 우긴다 해서, 우리가 일본팀과 싸울 이유는 없다. 만약 일본의 주장 때문에 등재결정문을 바꾼다고 하면(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때는 일본이 아니라 세계유산위원회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강제노동’이라는 점을 인정받았으므로, 이 문제가 다른 문제를 푸는 데 나쁜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즉 ‘칸막이 대응’이 필요하다. 아베 총리나 기시다 외상의 발언은 국내용의 성격이 짙다. 계속해서 일본이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면, 점잖게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계유산위원회의 등재결정문을 바꾸라”고 하면 그뿐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안호영 주미대사와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일대사가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주최 세미나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사사에 대사는 “한일 모두 국내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합의를 이뤄내 등재를 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것들은 사소한(minor) 일”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안 대사는 “합의한 내용은 문안으로 나와 있고, 앞으로 합의한 내용을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사사에 대사는 다시 “너무 구체적인 자구(language)에 매달려선 안 된다”고 했다. 일본이 약속한 ‘정보 센터 설립’ 등을 제대로 이행할지를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사사에 대사의 발언은 평상시 법과 원칙, 기록과 약속을 중시하는, 글자의 자구를 중시하는 일본의 태도와는 큰 차이가 난다. 강제징용은 있어서도 강제노동은 없었다는 일본의 논리도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할 때 ‘광의의 강제성’은 있었어도,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궁색한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원하는 걸 100% 달성하지 못한 것은 틀림없지만, 100% 달성은 무리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한일문제는 우리 뜻대로 해결되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제질서와 환경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늘 목표를 높게 잡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유산 등재 문제는 일본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지 지켜보고, 제대로 지키도록 압력을 생사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 일은 착오가 없도록 추진해야 한다.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독일 본 현지에서 일본의 사토 구니 유네스코 대사의 발언이 끝난 뒤 “한국 정부는 위원회의 권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일본 정부가 오늘 이 권위 있는 기구 앞에서 발표한 조치들을 성실하게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위원회의 컨센서스 결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즉 일본의 발언과 이행의지를 신뢰하기 때문에 표대결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다. 조태열 차관과 안호영 대사가 말한 것처럼 앞으로는 일본이 한 약속을 상기시키고,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공격이다.

일부에서는 말한다. 일본 정부의 강제노동 관련 발언과 인포메이션 센터(정보센터) 건립 약속이 결정문의 본문에 명기돼 있지 않고 주석과 참고문에 들어 있어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비판한다. 맞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이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망신 주는 게 아니라면, 그런 발언이 어디에 들어있든 무슨 상관인가. 발언의 내용을 일본이 알고 있고, 한국이 알고 있다. 그것도 양국 최대의 현안이었다. 국제사회에 일본이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것을 알리는 일보다 등재 유산을 소개하는 기념관이나 홍보관 등에 조선인의 강제노동 사실을 명기하도록 해 유산을 둘러보는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그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약속을 깨뜨리는 것은 일본의 자유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난과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2017년 12월 1일까지 경과보고서를 내도록 되어 있고, 2018년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행결과를 점검받아야 한다. 이행을 안 한다면, 그때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망신 줘도 정당성은 우리에게 있다.

이번에 독일 본에서 세계 유산 등재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일 간의 대결은 분명 아전인수격 해석의 여지를 남긴 ‘미봉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미봉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강제노동’을 못 박지 않은 걸 우리가 계속 문제 삼았다면, 표대결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도 예측 못한다. 진 쪽은 국내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며, 양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깊게, 더 오랫동안 외교 냉각기를 가져야 했을 것이다. 양국 모두 그런 사태는 원치 않았음에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문제를 이기고 졌다는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비긴 것이며, 한일 양국은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전에서 우리는 공격수라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싶다.

아사히신문은 8일자 사설에 이렇게 썼다.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쌍방이 마지막까지 양보해서 최악의 사태를 면한 것도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위원회에서 ‘부의 역사’도 포함해 정보발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실히 실행해서, 세계유산을 다면적인 역사를 증언하는 장소로 만들 책임이 있다…” 이번에 등재된 산업시설이 몰려 있는 일본 규슈지역 신문이지만 전국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유력지 니시니혼(西日本)신문도 ‘빛과 그림자를 응시하며 미래로’라는 7일자 사설에서 ‘부의 유산’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내에도 일본의 책임을 촉구하는 그룹과 세력이 분명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이번 외교전을 우리만의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외교전에 대한 평가를 보면서 한 가지 걱정을 하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일협상이다.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를 말하긴 어렵지만, 만약 군 위안부 문제를 이번 사안과 같은 시각에서 평가한다면 절대로 만족할 만한 합의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예 합의를 하지 않고 폭탄 돌리기를 하는 것처럼 다음 정권으로 넘기든가, 아니면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대통령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든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둘 다 고민스러운 선택이다. 고민의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각, 즉 여론이다. 국민은 군 위안부 문제를 어느 수준에서 해결해야 만족할 것인가. 누구도 대답하기 힘들지만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한일갈등은 정부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과 언론도 함께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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