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대중음악(K-pop)이 최근 칠레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한국과의 교류 폭이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칠레 대통령실 제공
“33인 광원 구출은 우리가 신념을 갖고 단결했을 때 이뤄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63)은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던 광원 33인의 구출이 이뤄진 2010년 10월 13일이 칠레의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었다고 말했다. 피녜라 대통령은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동아일보와 서면인터뷰를 가졌다.
피녜라 대통령은 2010년 3월 글로벌 경제위기와 한 달 전 발생한 대지진의 여파로 침체에 빠진 칠레를 구해낼 ‘경제대통령’이라는 기대 속에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취임한 해 8월에 칠레 북부의 산호세 광산에서 광원 33명이 지하갱도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광원들을 모두 살려내는 ‘기적의 생환 드라마’를 진두지휘했고, 전 세계는 광원들이 구조용 캡슐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장면을 응원하며 지켜봤다.
피녜라 대통령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긴박한 순간에는 강한 리더십과 믿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 제한을 두지 말고 가능한 모든 도움과 조언을 청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33인의 광원들은 이후 정신적 외상과 후유증, 실업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피녜라 대통령은 “그들이 매우 특이한 정신적 외상을 겪었기 때문에 회복에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며 “두 번째 삶의 기회를 얻은 만큼 이제는 그들 스스로가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원 구조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직후 피녜라 대통령 지지율은 63%까지 치솟았다. 이듬해에는 칠레의 경제성장률을 6.8%로 끌어올리며 지지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 교육시장 개방과 공공부문 축소 등의 개혁조치에 대해 대학생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벌이는 등 반발했고 지지율은 현재 33%로 떨어진 상태다.
피녜라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국내 반발에 대해 “칠레는 다시 성장하고 있는 나라”라며 “국민들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을 동시에 다 얻을 수는 없다. 지금의 개혁조치가 앞으로 우리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거라는 걸 칠레 국민들도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는 한국과 2004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한-칠레 FTA는 한국이 처음으로 체결한 FTA다. 피녜라 대통령은 “한-칠레 FTA는 칠레가 아시아 국가와 처음으로 맺은 FTA”라며 “그 덕분에 한국과의 교역이 2003년 이후 318%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교역규모로 따지면) 현재 칠레의 5번째 교역상대국이지만 앞으로 양국간 투자와 교역대상을 늘리는 등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수교 50년을 맞은 양국 관계에 대해 “나는 아직도 한-칠레 관계의 최고의 순간은 다가오지 않았다고 확신한다”며 향후 발전 가능성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근 남미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의 세력 확대가) 결코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중국이 우리의 상품을 팔 수 있는 더 넓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무역에 대한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피녜라 대통령은 이번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해 “핵 안보에 관한 양국간, 다자간, 지역간 등 다양한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핵 이용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완전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회의의 과제는 이러한 목표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녜라 대통령은 핵 안보와 관련해 각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칠레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 특별 실무회의를 통해 지역적 차원에서 불법적인 핵물질 교역을 금지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원전 2기를 운용 중인 칠레는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정학적 특성 탓에 핵 이용의 안전성을 높이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피녜라 대통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적하며 “원자력 에너지를 미래에도 계속 사용하려면 (관련 시설 및 기술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과 원자력 에너지로부터 얻는 혜택을 잘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 피녜라 대통령 약력
△ 1949년 칠레 산티아고 출생 △ 1971년 칠레 가톨릭대 경제학부 수석 졸업 △ 1990∼1998년 산티아고 상원의원 △ 2001∼2004년 칠레 국민혁신당 당수 △ 2006년 대선 출마, 여당 후보 미첼 바첼레트에게 패배 △ 2010년 1월 대통령 선거 당선, 3월 취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