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이명박 정부, 조의는 절제… 성의는 표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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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주민에 위로의 뜻… 조문단은 안가”

DJ-정몽헌 유족 답례성 방북만 허용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사망’ 확인 보도가 나온 이튿날인 20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북한의 일반주민’을 향해 위로의 뜻을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자체에 대한 공식적인 조의(弔意)를 내놓지는 않았다.

정부는 또 정부 차원의 조문단을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의 방북 조문도 불허할 방침을 밝혔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한해서는 방북을 허용하기로 했다. 북한은 과거 깊은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각각 2009년, 2003년 숨졌을 때 공식 조문단을 서울로 보낸 바 있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예상된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외교안보장관회의가 끝난 직후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정부 담화문을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날 장관회의 전 북한 주민과 한국민을 동시에 겨냥한 담화문을 발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신속하게 결정하고 △남남갈등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큰 원칙이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등 자문교수단 8명과 조찬 회동을 갖고 ‘조문 논란’을 넘어서기 위한 조언을 들었다. 담화문은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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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부는 조문단을 안 보내기로 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 전 회장의 유족에 대해서는 북측의 조문에 대한 답례로 방북 조문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 여사는 정부 발표를 듣고 “정부가 정말 잘했다. 우리가 가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정부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이 전했다.

정부가 나름대로 신속하게 방침을 정한 것은 조문 여부를 놓고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국론분열을 막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는 평가다. 담화문은 ‘보는 각도’에 따라 공식 조의를 삼갔다고도, 우회적 조의를 표했다고도 해석될 수 있게 작성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위기 국면에서 국론분열은 최악”이라며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사실 정부가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선 2030세대의 정서를 감안해 “조문 문제에 더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접수됐다는 후문이다. “북한의 장래가 불확실하다는 점에 젊은 세대가 불안해하는 만큼 최소한 이명박 정부가 ‘상황 관리’에는 성공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나름대로 중립적 방안을 취했다. 가깝게는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및 연평도 도발, 멀게는 아웅산 테러(1983년), KAL기 폭파사건(1987년)에 대한 김정일 책임론을 감안해 그를 직접 언급한 조의는 표할 수 없다는 쪽으로 정리됐다.

정부는 통상 12월 23일 시작되는 전방지역 초대형 성탄절 트리의 점등을 자제하도록 기독교계에 건의하겠다는 뜻도 담화문에 담았다. 북한은 그동안 수십 m 높이의 초대형 성탄절 트리의 화려한 불빛이 전방에 배치된 북한군과 주민에게 자극적이라는 점에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해 왔다. 김정일 영결식이 열리는 28일에 화려한 불빛을 북쪽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뜻을 담았다.

군 당국은 이날 군 선교연합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교계에 이러한 뜻을 전달했고, 수용하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점등 유보 기간에 대해 ‘금년에는’이란 표현을 썼지만 ‘올겨울’로 받아들여진다. 통상 트리는 1월 중순까지 불을 밝혔다고 한다. 정부 내에서는 한때 “영결식이 끝나는 29일부터는 재점등이 가능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화문에는 전날에 이어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안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유지해주기 바란다”는 국민에 대한 당부가 빠지지 않았다. 류우익 장관은 또 “군은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북한에 어떤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 흔들림 없는 상황장악력을 강조했다.

정치권은 정부의 결정을 대체로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한나라당은 정부 담화문 내용에 대해 조의를 표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두아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도 북한 주민에게 위로를 표한다”고 말했다.

뉴스가 나온 첫날 조의를 밝힌 민주통합당은 “정부가 북한 주민에게 위로를 보낸다는 조의를 표명한 것은 참으로 잘한 것이다. 남북관계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반응했다. 원혜영 임시 공동대표는 21일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양당의 동시 방북 조문’ 가능성을 타진할 생각이지만 한나라당은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북이 불허된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아직 불허가 확정됐다는 말을 못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희호 여사는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주역과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도 방북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정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김 위원장과 2007년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 노 전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권 여사가 함께 방북했으면 좋겠다는 게 이 여사의 생각”이라며 “그러나 정부가 결정할 일인 만큼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정부 담화문 全文 ::

국민 여러분, 정부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한반도 평화가 흔들리지 않도록 우방국과 긴밀하게 협력해 가면서 상황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군은 비상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북한에 어떤 이상 징후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경제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안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부는 북한이 애도기간에 있는 점을 감안하여 12월 23일로 예정했던 전방 지역에서의 성탄 트리 점등을 금년에는 유보하도록 교계에 권유하기로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현 북한 상황과 관련하여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이어서 조문단 방북에 관한 통일부의 방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부는 조문단을 보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대하여 북측의 조문에 대한 답례로 방북 조문을 허용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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