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권력이동]변혁기 맞은 4대정파… 분주해진 4색 움직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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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으로 여권의 권력지형에 일대 지각변동이 시작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당내 정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중립의 반란’을 이끈 소장파 의원들은 최근 구성한 ‘새로운 한나라’를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고 7월 초 전당대회에서 자신들의 대표를 내세워 친이(친이명박)계가 장악했던 당내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기세다.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 출범을 지지한 친박(친박근혜)계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6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분열상을 보인 친이계 가운데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쪽은 비주류의 역할 증대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총선 대선 국면에서 친박 및 중도·소장파와 선택적 연대를 추구할 움직임이다. 친이계 주류 퇴진론의 타깃이 돼온 이재오 특임장관과 ‘이재오계’는 침묵 속에 주도권 회복을 위한 절치부심에 들어갔다. 》
■ 여유만만 친박계

“(새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이) 국민 뜻에 부응해서 잘하시길 바란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8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한 말이다. 대통령 특사로 9박 11일 동안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그리스 등 유럽 3개국을 방문하고 이날 돌아온 그는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됐는데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축하드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내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6일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중립성향 비주류인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가 등장하면서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박 전 대표가 당장 7월경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여권 내 세력 재편의 방향도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박 전 대표는 5일 그리스 아테네 방문 도중 기자간담회에서 “내년은 중요한 선거들이 있으니 아무래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내년 총선 국면부터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박 전 대표가 이번 전대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선택은 △친박 인사를 당대표 후보로 내세우거나 △친박계는 아니지만 우호적인 후보를 간접 지원하거나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 방안 중 하나로 정리된다.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려면 대선 1년 6개월 전에 당대표를 포함한 선출직 당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당헌 당규 규정 때문에 당권에 직접 도전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친박계에선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국면 전까지는 현재와 같은 ‘조용한 행보’를 이어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영남의 친박계 중진의원은 “19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당의 ‘얼굴’로서 총선 승리를 견인한 뒤 자연스럽게 대선 승리를 이끄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은 “비우호적인 지도부가 등장해 끊임없이 박 전 대표를 공격하고 압박한다면 여간 부담이 아닐 것”이라며 “박 전 대표가 숙고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15일 이후 이루어질 이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전까지 당 안팎의 의견을 들은 뒤 나름 생각을 정리할 것이라고 가까운 인사들이 전했다. 원내대표 선거에서 결과적으로 친박계와 힘을 모은 당내 소장파와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계와의 관계 설정 문제도 면밀히 검토한 뒤 판단할 것이라는 얘기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기세등등 소장파

한데 모인 소장파 “초재선-중진들과 연대” 한나라당 남경필 권영진 정태근 구상찬 김성태 정두언 김성식 의원(왼쪽부터) 등 ‘새로운 한나라당’ 소속 소장파 의원들이 8일 오후 국회 정태근 의원실에 모여 향후 활동방향 등을 논의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데 모인 소장파 “초재선-중진들과 연대” 한나라당 남경필 권영진 정태근 구상찬 김성태 정두언 김성식 의원(왼쪽부터) 등 ‘새로운 한나라당’ 소속 소장파 의원들이 8일 오후 국회 정태근 의원실에 모여 향후 활동방향 등을 논의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한나라당의 변화를 위한, 소장파를 위한 마지막 기회다.”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 출범에 대해 소장파의 핵심인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8일 이렇게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2000년 16대 국회 출범 후 한나라당에 소장파가 본격 등장하며 당 혁신과 인적 쇄신을 주장한 지 11년 만에 소장파들에게 가장 우호적인 정치적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변화’라는 명분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생환’과 ‘당내 주도권 확보’라는 실리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됐다는 얘기다. 소장파들이 “왜 말을 바꾸느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8일 안상수 전 대표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에 뒤늦게 시비를 걸고 나선 것도 어렵게 온 기회를 자신들의 영향력 극대화에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

소장파와 가까운 한 당직자는 “어떻게 잡은 주도권인데 이를 그냥 두겠느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를 지켜내고 당 쇄신의 흐름을 확대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파 의원들은 8일에도 ‘새로운 한나라’ 모임을 중심으로 잇따라 회동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새로운 한나라’의 공동 간사인 구상찬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이라는 계파에 머물지 않고 당 혁신을 위한 정치적 공간을 넓혀 가겠다는 게 목표”라며 초재선 및 일부 중진으로 외연을 넓힐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중립 성향의 일부 수도권 중진들은 소장파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들과의 연대를 고민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8일 “지금까지 소장파들이 말만 앞서고 실천력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은 “그동안 소장파들이 다양한 채널로 네트워크와 스킨십을 형성한 게 이번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소장파가 이번 원내대표 경선을 계기로 친박계와 정치적 제휴를 하게 된 것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남경필 정병국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직후 출범한 박근혜 전 대표를 적극 지지했으나, 그해 말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박 전 대표와 충돌하면서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이번에 7년 만에 정치적으로 재회하게 된 박 전 대표와 소장파가 7월 전당대회에서도 한목소리를 낼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암중모색 이상득계

“이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SD)은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비주류인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가 등장한 데 대해 7일 이렇게 말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날 남미로 출국하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의원들의 마음이 (황 후보에게) 쏠렸다고 본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 결과에 대해 ‘친이계의 몰락’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데 대해 “동감하지 않는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과 관계없이 후보에 대한 선택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측이 빗나간 경우도 많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원내대표는 원내를 운영하는 것이고 당 대표가 당 운영을 맡는 것”이라고도 했다.

당내에선 황 원내대표의 당선이 친이계 핵심이자 주류로 불려온 이재오 특임장관계가 지원한 안경률 후보에게 SD계 의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의원은 일단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앞으로 이 의원은 당 안팎의 관측과는 별개로 최대한 정치 현안에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는 당내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혀왔고 실제로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자신과 가까운 이병석 의원이 출마했지만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내에선 이번 원내대표 선거를 계기로 SD계와 친박계, 소장파 세 그룹이 연대하거나 협력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친박계에서 SD계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리는 데다 소장파의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 등이 이 의원과 극심하게 대립해왔다는 점에서 이 의원은 당분간 관망과 탐색의 기간을 가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고립무원 이재오계

원내대표 선거에서 예상 밖의 일격을 당한 친이(이명박)계 주류는 당분간 충격을 추스르는 데 힘을 쓸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8일 부처님오신날(10일)을 앞두고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내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지역구 활동에 주력했다. 거의 매일 글을 올리던 트위터에도 6일 이후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당분간 이 장관은 여의도 활동을 자제한 채 장관직 수행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0일 ‘함께 내일로’ 모임에서 “재·보궐선거 이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계파 모임도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의 한 측근은 “지금은 조용히 지내면서 새로운 지도부가 일을 하도록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에도 친이재오계가 사실상 배제되면서 이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당장의 가장 큰 현안은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지만 이 역시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대에 이 장관이 출마해 당에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표로 당선되지 못할 경우 회복하기 힘든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 장관도 전대보다는 내년 대선 출마에 더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의 최측근인 이군현 의원이 2일 의원연찬회에서 ‘이재오-박근혜 공동 당대표론’을 내세웠지만 어느 쪽에서도 호응을 받지 못한 것처럼 현재로서는 친박은 물론이고 소장파와 친이상득계로부터 고립무원인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앞으로 친이계에 더 큰 위기가 몰아치고 나면 개헌론 등으로 불을 지피면서 더욱 결집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장관과 친이계의 진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15일 이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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