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로 파고들고 유머로 넘기고…달변가 DJ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6분



○ 논리적 설득
정확한 통계수치 제시하며
“첫째 둘째 셋째…”식 접근
철저한 준비로 말실수 줄여
○ 유머로 부드럽게
‘월급반납-고통분담’ 질문에
“靑서 밥먹여주고 재워줘
걱정 없으니 그럴 용의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말을 잘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주로 “첫째, 둘째, 셋째…” 식으로 논거를 제시한 뒤 결론을 이끌어 갔다. 또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자신의 말에 객관성을 뒷받침했다.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어려운 내용일수록 서민적인 어투로, 정확한 수치를 인용해 신뢰감을 주는 것이 DJ 화법의 맛”이라고 말했다.
DJ는 말실수가 거의 없었다. 사전 철저한 준비가 비결이었다.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면 며칠 전부터 거울을 보고 표정을 살피거나 녹음을 해 목소리 톤을 조절했다고 한다. 야당 총재 시절 ‘말을 너무 잘하는 것이 탈’이란 지적을 받자 DJ는 “다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DJ는 비판 받을 만한 일에 대해서도 나름의 논리를 세워 국면 전환을 꾀했다. 1997년 대선에 다시 출마했을 때 TV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했다’고 비판하자 DJ는 “저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약속을 못 지켰을 뿐입니다. 거짓말과 약속 위반은 분명히 다릅니다”라고 받아쳤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이 되면 불출마하겠다”고 했다가 출마하면서 “전두환 씨가 직선제 제의를 즉각 수락하고 건국대 사태 관련 학생들을 용공으로 몰아 탄압하는 것을 중지한다면 불출마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뛰어난 유머감각은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선 직후 가진 첫 생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월급 반납 의향을 묻는 질문에 DJ는 “그럴 용의가 있다. 나야 청와대에서 밥 먹여주겠다, 재워주겠다 걱정이 없지 않느냐”고 조크를 던졌다. 1999년 1월 한 TV 특별프로그램에서는 “사형선고를 받았던 1980년에 아내가 ‘김대중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르겠다’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 가장 섭섭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그는 곤혹스러운 상황도 유머로 빠져나가곤 했다. 1999년 2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중국 신화통신 기자가 ‘자민련과의 내각제 합의를 지킬 것이냐’고 묻자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중국도 그렇게 내각제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뒤 비켜나갔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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