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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1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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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책이든 'VICE', '부(副)', '차(次)'가 붙으면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주호 차관만큼은 예외다. 지난해 6월 수석에서 물러나는 순간부터 어떤 모습으로 컴백할 것인지 관심의 대상이었다. 결국 돌아왔다. 장관보다, 수석보다 더 주목을 받는 차관으로. 그는 수석 시절 교과부 고위공무원 물갈이에 나서 실국장 상당수를 날려버렸다. 가장 반개혁적인 부처라며 교과부를 질타했다. 노트에 이름이 쓰이면 죽게 된다는 일본만화이자 영화 '데쓰노트'가 교과부에서는 '이주호 노트'로 회자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취임한 지 100여 일이 지난 지금 교과부 안팎의 평가나 역학구도는 상당히 달라졌다. 우선 그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상당히 사라졌다. 사석에서 그는 "지인들 사이에서는 '인간성 하면 이주호'로 통하는데 왜 그렇게 나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곧 내 본모습을 알게 될거다"라며 웃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교과부 직원들도 "소문대로 무서운 분은 아니더라. 의외로 야단도 잘 안치신다"고 말한다.
실세 차관의 파워를 반기는 직원도 늘었다. 부쩍 이해찬 장관 시절을 얘기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콧대가 높다는 경제부처 직원들이 교육부로 찾아와 예산 관련 설명을 하고, 교육부가 추진한 정책이 '잘 먹혔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 타 부처와 예산이나 정책을 협의할 때 이 차관이 '보이지 않는 손'을 휘둘러 교과부에 힘이 실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너무 몸을 사린다는 것이 '실세 차관'에 대해 새로 생긴 불만이다. 그가 취임한 뒤 입학사정관제 확대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전수 공개, 대학수학능력시험 5년 치 성적 공개 등 일대 사건들이 이어졌다. 매번 이 차관이 배경으로 지목됐다. 그가 경쟁과 공개라는 교육 정책 밑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현안에 대한 언급이나 설명을 지나칠 정도로 피한 채 장관 뒤에만 머물렀다. 수석 시절처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는 차관으로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 때문이다. 교원평가제, 대학 개혁 등 과거에 그렇게도 강조하던 정책들을 교원단체 등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계의 스포트라이트는 여전히 그에게 쏠려 있다.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교육 권력의 역학 구도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개각설 또는 수석 교체 설이 나올 때에도 이 차관의 입지는 흔들림이 없다. 이 차관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학업성취도 공개 방식, 수능 성적 공개 범위, 입학사정관 추진 속도 등을 놓고 수석실과 부딪혀도 결국 차관의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최근 잡음을 일으킨 사교육 경감 대책 발표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이 차관의 역할 분담 와중에 결과적으로 장관과 수석실은 소외돼 버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과부가 내놓기에는 부담이 되는 내용이다 보니 미래기획위원회를 통해 띄운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교육 정책 결정 라인의 혼선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여전히 조직원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는 불만도 있다. 미공개 교과부 정책이나 교과부 내부 사정이 언론에 노출되면 대로(大怒)한다. 참여정부보다 더한 언론 통제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러다보니 민감한 정책도 추진 상황이나 도입 배경에 대해 사전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 여론과의 소통이 악화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두 달 가까이 진행된 조직개편 끝에 4일 발표될 인사를 앞두고는 또 다시 '이주호 노트'가 회자되고 있다. '신토불이'라는 유행어까지 돌 정도였다. (이 차관에게 찍히지 않도록) '몸과 땅이 하나가 될 정도로 납작 엎드려 있으라'는 슬픈 유행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