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레임덕에 관한 오해와 진실

  • 입력 2006년 12월 5일 03시 05분


레임덕(Lame duck)이라는 말이 영어로 ‘다리를 저는 오리’를 뜻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생뚱맞지만 이 오리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왜 다리를 절게 되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다리 저는 오리의 구슬픈 이미지에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엽총에 맞았거나 덫에 걸렸겠지….”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원래 이 ‘오리’는 사악한 의도에 희생된 것이 아니다. 자기가 멋대로 절룩거리는 것이다.

남북전쟁의 후유증이 가셔 가던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유난히 임기 마지막에 ‘제멋대로’ 통치 스타일을 구사하는 대통령이 많았다. 친한 사람 봐주기식 인사를 남발하거나, 말썽의 소지가 많은 법안에 무더기 서명하는 일도 잦았다. 특히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재선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 이 같은 일이 잦았다.

‘레임덕’이란 이처럼 국정 최고책임자의 자의적인 정책 집행 때문에 ‘뒤뚱거리는’ 국정을 비유한 말이었다. 반대자들이 힘없는 오리의 발목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조차 ‘레임덕’은 임기 말의 불가항력적인 권력누수를 뜻하는 용어로 이해되는 경우가 더 많다. 현대로 올수록 첫 구상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사명감 높은 지도자가 많아진 것일까.

마침 레임덕의 고향인 미국도 ‘다음번 대선에서 당선될 수 없으며’ 의회 과반을 상실해 권력 누수가 불 보듯 훤한 지도자가 생겼다. 그는 남은 임기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근 연방지방법원 판사에 진보성향으로 알려진 재닛 네프 판사를 지명했다. 동성애에 관용적인 네프 판사 지명은 공화당 내부의 맹렬한 반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지명한 것은 민주당과의 원활한 국정운영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부시 대통령이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하며 이라크 전략까지 수정할 뜻을 비칠 때부터 그는 민심의 판단에 자신을 맞춰 가기로 결심한 듯하다. 만약 이를 ‘굴복’이라고 말한다면 고개를 갸웃할 일이다.

선거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남녀가 연인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을 기쁘게 해 주겠다’는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마음을 열고 사귈 수 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연인은 ‘진심을 알아 달라’는 호소만으로 더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내 진심’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별까지 포함해서 검토할 때 서로가 불행을 줄이는 것이다. ‘진심을 모른다’고 화만 내면 마음은 떠날 수밖에 없다.

“나는 국민과 무엇 무엇을 약속했다. 그런데 적들이 방해한다. 시간도 없고 여건이 불리하니 남은 카드를 다 걸어 관철하겠다.” 만약 이 같은 오기를 부린다면 헛된 일일 것이다. 국민이 이제 그 약속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받아들여지지 못한 ‘진심’이 있다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다.

길고 짧은 것의 박자를 맞춰 나가지 못하는 것을 일컬어 박자치(拍子癡)라고 한다. 긴 흐름을 타야 할 일과 당장 해결할 일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 파트너인 국민과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레임(Lame)이라고 한다. ‘시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던가.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 길을 걷지 않을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은데….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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