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정 감시속 10분만에 배4척 쫓겨나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2시 56분


일본 정부가 13일 북한과의 모든 인적 물적 교류를 전면 봉쇄하는 추가 제재조치를 의결함에 따라 일본의 항구에 정박 중인 모든 북한 선박에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이날 오후 돗토리 현 사카이미나토 시에서 북한 선적 ‘삼해 1호’(오른쪽)가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의 감시하에 중고 자전거를 가득 실은 채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다. 멀리 방송사 소속으로 여겨지는 헬기가 보인다. 사카이미나토=천광암 특파원
일본 정부가 13일 북한과의 모든 인적 물적 교류를 전면 봉쇄하는 추가 제재조치를 의결함에 따라 일본의 항구에 정박 중인 모든 북한 선박에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이날 오후 돗토리 현 사카이미나토 시에서 북한 선적 ‘삼해 1호’(오른쪽)가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의 감시하에 중고 자전거를 가득 실은 채 항구를 빠져나가고 있다. 멀리 방송사 소속으로 여겨지는 헬기가 보인다. 사카이미나토=천광암 특파원
13일 오후 3시 일본 돗토리(鳥取) 현 사카이미나토(境港) 시 다케노우치(竹內) 부두.

일본 항만당국으로부터 이날 중 항구를 떠나라는 통보를 받은 북한 화물선 네 척이 아직 부두에 정박해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날 북한 핵실험에 따른 제재 조치로 북한 선박 전면 입항 금지와 북한 상품 전면 수입 금지를 공식 결정했다.

‘금강 1호’ 등 세 척은 이미 선적을 끝내거나 중단한 상태였고 ‘송도원 1호’에서만 선원들과 수출업자들이 중고 자전거를 싣느라 여념이 없었다.

송도원 1호에는 산처럼 쌓인 중고 자전거 이외에도 폐품에 가까운 중고 냉장고, 닳을 대로 닳은 타이어 등이 통로까지 가득 실려 있었다.

북한 화물선 주변에는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들이 끊임없는 감시의 눈길을 보냈다. 상공에는 일본 언론사 경비행기와 헬리콥터가 윙윙 소리를 내며 선회하고 있었다.

북한의 선원들은 철조망 너머 보도진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손길을 놀렸다. 그 대신 북한과의 교역 중단으로 밥줄이 끊길 처지에 놓인 일본의 중고품 수출업체 관계자들은 삿대질을 하며 한바탕 분풀이를 했다.

오후 4시 반. 작업을 마친 송도원 1호는 검은 연기와 타이어를 태우는 듯한 역한 냄새를 뿜어내며 방파제를 지나 동해 쪽으로 멀어져 갔다. 완전히 모습을 감추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부두 주변 물류업체 직원들과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이런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무덤덤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북한과의 교역 단절을 아쉬워하는 표정인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반 시민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카이미나토 시가 북한과 일본의 우호를 상징하는 항구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사카이미나토 시는 1992년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북한의 지자체(원산시)와 우호 제휴 관계를 맺었다. 지금까지 상호 방문 횟수만도 14차례에 이른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사카이미나토 시청 현관에는 김일성 주석이 선물한 도자기와 다기(茶器)세트가 진열돼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공교롭게도 이 도시가 ‘갈등의 항구’로 기억된다. 올해 4월 독도 주변 해역의 수로 측량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때 일본 조사선 2척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대기하던 곳이 이 항구였다.

사카이미나토 시에서 원산항까지 거리는 약 600km다. 일본 주요 항구 중에서는 북한과 가장 가깝다. 일본의 모든 항구 가운데 북한 화물선의 입출항이 가장 빈번한 곳으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인 송이버섯은 약 60%가 사카이미나토 시를 통해 일본에 들어왔다.

항만물류업체 직원인 가노 다다시(加納匡·33) 씨는 “북한 선박들이 송이버섯과 어패류 등을 가져온 뒤 중고 전자제품과 의류, 자동차와 자전거를 가득 싣고 돌아가곤 했다”고 말했다.

그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가노 씨는 “교역 중단으로 북한은 타격을 받을지 모르지만 사카이미나토 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카무라 가쓰지(中村勝治)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원산시와의 우호 제휴 관계를 파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의회는 “20년 동안 쌓아 온 관계를 하루아침에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러나 나카무라 시장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는 한 우호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택시운전사인 이노우에 데루오(井上照夫·55) 씨는 “이곳 사람들은 평소 북한과의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피부로 핵실험의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인들은 얼마나 큰 공포를 느낄지 짐작이 간다”고 털어놨다.

사카이미나토=천광암 특파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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