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기총리 확실시 아베의 시대]<下>한일관계 먹구름

  • 입력 2006년 7월 29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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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당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을 접견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4년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당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을 접견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관방장관은 9월 하순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뒤 내각의 틀이 잡히는 대로 해외 방문 외교에 나선다. 최우선 목표는 미국도 우려를 나타낸 아시아 외교의 정상화. 그는 첫 방문지로 중국이 아닌 한국을 선택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두 정상이 신뢰를 갖고 미래지향적으로 극복해 나가기로 합의한다. 독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때는 기대할 수 없었던 ‘퍼스트레이디 외교’도 화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열성 한류(韓流)팬인 아베 총리의 부인은 노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겨울연가’를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국제학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교수가 가상하는 가장 낙관적인 한일 관계 개선 시나리오다.》

고하리 교수는 “지금보다 한일 관계가 나빴던 1983년에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취임 직후 한국을 전격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가 단번에 호전된 예가 있다”고 설명했다.

▽알고 보면 친한(親韓)?=아베 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는 강한 적대감을 표시해 왔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종종 친밀감을 나타내 왔다.

아베 정권의 청사진에 해당하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도 그는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법의 지배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나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낙관주의다”라고 쓰고 있다.

또 “일본은 오랜 세월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흡수해 온 역사가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한류 붐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과거에 대한 겸허함과 예의바르고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꼽는 것도 한국 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이런 친밀감과 원칙론에 얼마나 진실이 담겨 있고 나아가 구체적인 정책으로까지 실현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각론은 사사건건 갈등=아베 장관은 자민당 간사장 대리이던 지난해 4월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비판했을 때 ‘내정 간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그의 굴절된 역사관은 고이즈미 총리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이 그의 지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는 1997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소장의원 모임’을 결성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역사교과서 왜곡을 열심히 후원해 왔다.

한국이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재무장 개헌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노 대통령이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보통 국가, 나아가서는 세계의 지도적인 국가가 되려 한다면 법을 바꾸고 군비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자 그는 “우리나라 헌법인 만큼 일본인 자신이 결정할, 그야말로 내정 문제”라며 날을 세웠다. 한일 간 최대 걸림돌인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관해서는 고이즈미 총리보다 더 우려할 만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부하도, 측근도, 당내 기반도 없던’ 고이즈미 총리가 우익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이용했다면 아베 장관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배론자라는 것.

▽“참배 계속하면 한일 관계 개선 난망”=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자민당 총재 경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자 아베 장관은 총리가 된 뒤의 참배 여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도 엇갈린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최근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어 막상 총리가 되면 참배를 중단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교린(杏林)대 종합정책학부 구라타 히데야(倉田秀也)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는 자세로 참배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라타 교수는 “일본 외교의 중심축은 미국이기 때문에 한미 관계가 지금처럼 나쁜 상황에서는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앞으로 한일 관계는 순탄치 않은 갈등관계가 지속되리라는 데 대다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노 정부의 대일 외교 노선도 변수로 꼽힌다.

노 대통령은 2004년 7월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임기 중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대일 비판의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노 정권이 반일(反日)을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소재로 이용하려 한다며 고깝게 여기는 시각이 많다.

물론 청와대 측은 이를 단호하게 부인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베 장관이 고이즈미 총리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든지 관계 개선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이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내정형’ 고이즈미 ‘외교형’ 아베▼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2001년 4월 27일 취임회견에서 “미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를 기초로 이웃 여러 나라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군사적 운명공동체를 뜻하는 ‘미일동맹’ 대신 격이 크게 떨어지는 ‘미일우호’라는 표현을 고이즈미 총리가 쓴 데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날 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미일동맹’ 강화를 요청했으나 고이즈미 총리가 ‘미일우호’라고 응답하는 바람에 두 정상의 대화는 겉돈 채 끝을 맺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를 바로잡아준 참모가 당시 아베 신조 관방 부장관이었다.

도쿄(東京)대 법학정치학연구과 후지와라 기이치(藤原歸一)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는 내정(內政)형 지도자”라고 말한다. 총리가 되기 전에 외교를 경험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외교를 내정을 위한 방편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아베 관방장관은 ‘전공분야’가 외교다. 내정에 관해서는 경쟁자들에게서 “아베 장관은 경제를 모른다”는 공격을 받지만 외교는 다르다.

그는 ‘외교의 아베’라고 불리며 1980년대 일본 외교를 좌지우지한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비서로 정계에 첫발을 디딘 뒤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누볐다. 1993년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돼 소속된 곳도 외무위원회였다.

그는 ‘외교는 내정으로 통한다’는 소신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따라서 총리가 된다면 외교 분야의 성과를 지렛대로 삼아 ‘자립국가 일본’ 만들기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그가 주장해 온 내용을 보면 미일동맹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아베 장관은 미국이 공격을 받으면 자위대가 함께 싸울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이 일본의 자연권이라고 주장해 왔다.

정상 간 대화가 끊긴 중국과의 관계는 일단 복원을 시도하면서도 견제의 끈은 결코 놓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는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자신의 대중(對中) 외교의 원칙은 “정경(政經) 분리”라고 강조한 뒤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는 선에서 중국을 향해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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