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징발 장관들 개각 발표 났는데도 장관직 수행

  • 입력 2006년 3월 4일 03시 05분


열린우리당 후보로 5월 지방선거에 출마할 장관들을 차출한 3·2개각의 후속조치를 둘러싸고 중립성 시비가 일고 있다. 명백하게 지방선거 출사표를 냈는데도 즉각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장관직을 계속 유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후임 장관 내정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 임명되기까지 업무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선거용 장관 차출도 모자라서 장관직을 유지하며 선거운동까지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준 ‘신종 관권선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 중립성 시비

이번 개각으로 물러나게 된 오영교(吳盈敎) 행정자치, 진대제(陳大濟) 정보통신, 오거돈(吳巨敦) 해양수산부 장관은 모두 열린우리당 후보로 각각 충남지사, 경기지사, 부산시장에 나설 예정이다. 후임 인선이 미뤄진 이재용(李在庸) 환경부 장관도 일찌감치 여당의 대구시장 후보로 ‘낙점’된 상태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현직 장관이다. 선거에 중립을 지켜야 할 장관이 선거출마를 공언하고도 장관직을 유지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장관은 비서진과 사무실 차량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더욱이 지금은 열린우리당이 당을 지방선거체제로 전환하는 등 사실상 지방선거전이 시작된 상황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2개각 때는 열린우리당의 2·18 전당대회를 위해 당 복귀를 서둘렀던 정동영(鄭東泳) 통일,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개각 명단 발표와 함께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두 부처엔 후임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차관이 장관을 대행하는 체제를 도입했다.

이번 개각에서 퇴진이 발표된 선거차출 장관들은 다음 주부터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예정이지만 사표 수리가 안 됐다. 1·2개각 때에 비해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리는 있지만 후임 장관과의 원활한 인수인계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새로 도입된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의 허점 탓에 이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규정상 정부가 국회에 국무위원 내정자의 인사청문을 요청하면 국회는 해당 상임위에서 청문절차를 마친 뒤 20일 안으로 그 결과를 정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 후임 장관 내정자가 20여 일이 소요되는 인사청문회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선 현직 장관이 그 기간에 업무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그것이 출마 장관들을 즉각 퇴진시키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기도 하다. 김완기(金完基)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후임 장관과의 원활한 인수인계를 위해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6∼14일) 뒤 절차를 거쳐 이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진 장관의 경우 노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수행하기 때문에 즉각 퇴진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정치활동을 위해 물러나는 장관들이 장기간 장관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출마를 희망하는 장관들이 장관직을 수행하는 기간은 10여 일 정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10여 일 더 장관직을 수행한다고 관권선거 운운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그러나 장관직 인수인계는 통상 각 부처의 기획관리실장이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신임장관에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후임 장관이 직접 인수인계하는 것은 전례도 드물고, 별 필요도 없다는 게 공직사회의 상식이요 관행이다. 또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도입 이전엔 단 하루 만에 장관직 교체가 이뤄졌다. 인수인계를 이유로 면직을 미루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설명이라는 지적이다.

○“즉각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이방호(李方鎬) 정책위의장은 3일 “사실상 장관도 아닌데 계속 장관직을 이용하는 것은 중립성과 공명선거에 큰 문제가 된다”며 “차관대행 체제 등을 즉각 도입해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또 같은 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아직 새 장관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핑계로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선거에 이용해 보겠다는 생각은 유치하다”고 꼬집었다. “교체된 장관들은 깨끗하게 장관직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게 이 대변인의 주장이다.

민주당 김재두(金在杜) 부대변인은 “1·2개각 때 정동영, 김근태 장관은 즉각 사표를 수리하더니 이번엔 안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꼬집었고, 민주노동당 박용진(朴用鎭) 대변인도 “선거 출마를 위해서 물러나는 장관은 즉각 사표를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징발 장관들 ‘할수 없는일’

5·31지방선거에 ‘징발’되기 위해 교체되는 장관들의 ‘입’과 ‘발’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만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고 광역단체장 출사표를 낼 예정인 오영교 행정자치, 오거돈 해양수산,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향후 공식 비공식 활동이 모두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은 개각 발표에도 불구하고 장관직을 유지한 상태여서 공무원으로서 선거 중립 의무 및 선거운동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우선 장관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선거법 85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무엇이냐는 구체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될 수 있다.

내놓고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도 장관직을 유지한 전례 자체가 거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의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면서 “이 때문에 지위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예비후보자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한을 받는 게 많다. 선거사무소를 설치할 수 없고, 유급 선거 사무원도 둘 수 없다. 자신을 홍보하는 명함을 거리나 시장 등에서 배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장관직을 유지해 득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제법 있다. 현재 선거법상으론 이들 장관이 출마지역에 자주 나타나 각종 행사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선거법 86조 1항은 공무원이 출마지역에 정상적 업무 외의 이유로 출장을 가는 것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선거기간 중’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5·31지방선거의 선거기간은 5월 16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현 장관들에겐 제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 또 장관으로서 해당 출마지역에 선심성 사업을 펼칠 수도 있다. 선거법은 국가의 예산으로 시행하는 사업 중 즉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의 기공식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선거기간 중에만 해당된다.

‘입’은 조심해야 한다. 선거법은 공무원이 특정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이런 발언을 할 경우엔 바로 선거법 위반이 된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