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수사에 ‘상당한 역할’… 부담 느낀듯

  • 입력 2005년 11월 2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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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임명장 받는 李 前차장20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H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수일 전 국가정보원 2차장(오른쪽)이 2001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고 있다. 가운데는 신건 전 국정원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1년 임명장 받는 李 前차장
20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H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수일 전 국가정보원 2차장(오른쪽)이 2001년 11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고 있다. 가운데는 신건 전 국정원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앞으로 어떻게 수사를 할지….”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수사와 관련해 3번 검찰 조사를 받은 이수일(李秀一·호남대 총장) 전 국정원 2차장(국내 담당)이 20일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한 도청 수사팀의 한 검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청 수사팀은 21일 새벽까지 검찰청사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왜 자살했나=이 전 차장은 10월 4일부터 3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차장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과 김영일(金榮馹) 전 의원 등이 폭로한 도청 문건이 국정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전 차장은 신건(辛建) 전 국정원장의 구속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차장에 대한 조사 뒤 수사팀 관계자는 “의미 있는 진술을 많이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전 차장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 전 차장은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담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전 차장은 검찰 소환조사 직후 지인들에게 “검찰 수사가 마녀사냥처럼 진행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호남대 총장직도 사직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 전 차장과 함께 일했던 국정원의 한 간부는 “이 전 차장이 내성적이고, 성격이 여려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를 몹시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청 수사팀은 “이 전 차장의 죽음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차장의 국정원 2차장 임기(2001년 11월∼2003년 4월)가 신 전 원장의 임기와 많이 겹치지 않은 데다, 중요한 진술은 이 전 차장이 아니라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에게서 나왔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어떻게 되나=검찰은 공식적으로 “수사에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임동원(林東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을 구속한 데 대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측은 물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까지 구속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이 전 차장 자살까지 겹쳤기 때문.

특히 검찰은 도청 정보의 정치권 유출 등에 대한 수사를 남겨놓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남상국(南相國) 전 대우건설 사장 등의 자살 이후 관련 사건 수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전 차장은 누구=전북 완주 출신으로 중동고와 서울대 행정학과를 나와 행정고시(10회)에 합격한 뒤 경찰에 입문했다.

서울 종암경찰서장, 치안본부 기획부장, 경찰청 형사·정보국장, 경기지방경찰청장, 전북지방경찰청장, 국립경찰대학장 등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감사원 감사위원과 사무총장, 한국감정원 원장 등을 거쳐 국정원 2차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2003년 12월 호남대 총장에 취임했다.

이 전 차장은 신 전 원장의 전북 전주 북중-서울대 법대 후배로, 신 전 원장은 올 3월 이 전 차장이 총장으로 있는 호남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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