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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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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발표의 의미▼
▽남성욱=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가 막판에 극적으로 반전된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 특색이다. 내막을 보면 이것은 북-미 양국의 강경파를 의식한 일종의 언론 플레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어렵게 진통을 겪으며 합의한 만큼 이행 과정에 이의를 달지 말라는 메시지다. 실제로 7월의 1단계 회담이 끝난 직후 북-미 양측은 4차례 뉴욕 채널 접촉을 통해 합의를 위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평탄하게 타결되는 모습보다는 어렵사리 타결되는 모습이 앞으로 강경파를 설득하는 것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측면이 있다.
▽김태현=협상 타결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대북 제재라는 위기를 극복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차기 협상이 나아갈 방향성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일정 성과가 있었음에도 모호한 규정이 많은 이번 합의서 성명을 도출하는 데 1, 2단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20여 일의 회의를 한 것이다. 앞으로 실질적인 합의가 얼마나 힘들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남=공동성명이 모호한 형태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북한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이견이 극명한 상황에서 분명한 합의문을 내놓겠다는 것은 합의를 안 하겠다는 뜻이나 같다. 따라서 일종의 구동존이(求同存異, 이견은 미루고 의견을 같이하는 부분부터 협력한다) 방식으로 합의를 이끈 것이다. 물론 모호성은 앞으로의 협상에서 발목을 잡게 될 수도 있다.
▽김=모호성이 많은 합의는 합의를 이끄는 데 도움은 되나 필연적으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향후 북-미 간의 싸움은 모호성을 없애면서 자기편에 유리하게 만드는 게임이 될 것이다. 다소 불명확해 보이는 미래이지만 이번 합의가 한반도 비핵화 보장으로 이뤄지도록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합의의 내용과 쟁점▼
▽남=공동성명 6개항의 키워드엔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이후 북-미 관계를 지배했던 거의 모든 단어가 망라돼 있다. 세월을 더 되돌려 보면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북-미 간의 협상 테이블에서 한 번 이상 거론되었던 내용들이 총망라됐다. 그만큼 이번 합의사항이 갖는 파급 효과는 작지 않을 것이다.
▽김=그중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다. 북-미 관계 정상화, 북-일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협정 등의 모든 협상은 한반도 비핵화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의 포기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이다. ‘포기’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어밴던(abandon)’의 의미가 무엇이냐,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남=합의 내용을 구조적으로 본다면 핵 포기와 그에 상응한 보상이라는 두 개의 기둥과 그것을 지지하는 지렛대로서의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뤄져 있다. 굳이 시점으로 보자면 포기는 과거, 보상은 현재, 평화체제는 미래를 지향하는 이슈다. 현재는 핵 포기가 중요하지만 향후 상황의 진행 속에서는 대북 보상과 평화체제 구축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결국 쟁점은 검증이다. 이번 합의 내용을 가지고 북-미가 지루한 신경전을 벌인다면 합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검증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켜 초기에 양자간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김=이번 합의를 1항의 북핵 포기가 전제가 돼야 2항의 북-미 관계 정상화가 가능하고 그 뒤 6자가 에너지 교역 및 투자분야에서의 경제협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면 협상은 갈 곳이 없을 것이다. 북한이 핵 동결 의지를 밝힌 뒤 일정기간을 거쳐 포기에 들어간다면 그와 동시에 북한의 보상 요구가 이행된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평화체제 구축문제▼
▽남=결국 핵심적인 쟁점은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포기할 것인지 여부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언제 돌아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는 시점이 언제인가가 문제다. 북한이 아무런 조건 없이 NPT에 복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소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지켜져야 복귀할 것이다. 대략 3단계로 볼 수 있는데 1단계는 북한의 NPT 복귀와 IAEA 사찰 수용 의사에 대한 미국의 중유 공급 재개 의지 표명이다. 2단계는 어느 시점에 맞춰 이행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것이고, 3단계는 실제 이행이다.
▽김=이번 합의는 내부에 많은 패키지가 들어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전력 공급 문제는 한국과, 관계 정상화는 미국 및 일본과 양자회담을 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또다시 6자의 틀에서 규율된다. 6자 회담이 지금보다 좀 더 자주 열려야 하고 거의 상설에 가까운 실무회담 형식이 되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북한이 핵을 정말로 포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즉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다 아니다 하는 식의 접근보다는 북한이 핵을 갖지 않도록 하는 신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같은 구조를 창조적으로 만들면서 북한이 자연스럽게 포기하도록 하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김=6자 회담과는 별도로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합의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정한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을 논의하려고 할 경우 애초의 목표 달성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평화협정 논의는 6자회담보다 격을 높여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남북과 미국 중국의 4자 체제로 평화협정 체제 구축을 논의할 것이며 이 체제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의결기구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 체제 논의로 이행하는 문제에선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각국은 이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광역기동군화를 추진하는 미국이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주목된다.
▽김=4자가 중심이 되겠지만 6자회담 참가국인 일본과 러시아의 역할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일본과 러시아가 일종의 관찰자(observer) 내지는 보장자(endorser) 역할로 참여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제네바 합의의 부활?▼
▽남=공동성명 3항에 에너지 지원과 관련한 조항이 들어간 것은 6자가 진정으로 북한의 시급한 에너지난 타개를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령 경수로 제공을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의 일환으로 인정하고, 에너지 공급 조항이 중유 공급 재개로 이어질 경우 1994년 제네바 합의와 유사하게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당시와는 다르다. 11년 전처럼 양자회담이 아니라 다자회담이었고,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반영됐다.
▽김=제네바 합의의 복원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체제 내에서는 일종의 금기다. 제네바 합의의 핵심이 북핵 동결 및 궁극적인 폐기의 대가로 경수로 공급과 중유를 제공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유 제공은 어렵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신포의 경수로 건설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실제로 한국의 대북 중대 제안 발표 시 미국의 협상파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는 후문이다. 미국 내 강경파에 밀려 제네바 합의 복원에 대해서 운도 떼지 못했던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전력 공급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남=이번 합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일본이다. 납북 일본인 문제를 거론해 6자회담 타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난을 들었던 일본이 이번 합의에 도장을 찍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일본 국내적으로 본다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이제는 국내 정치용으로 납북 일본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다른 측면으로 보면 동북아에서 기득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김=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 수행도 평가할 만하다. 2월 북한 외무성의 핵무기 보유 성명, 이어진 미국의 북한에 대한 ‘폭정의 거점(outposts of tyranny)’ 발언 등 상황이 악화일로였는데 북한을 6자회담으로 다시 끌어들인 것이 한국 정부이다. 그전까지 북한은 핵문제는 북-미 간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한국은 빠지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를 넘지 않는 상황에서 대북 전력공급 등의 정책이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자칫하면 기존의 쌀과 비료 지원에 대해서도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남=이번 합의는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핵 문제의 윤곽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신중한 행보를 보였던 참여정부가 이번에 핵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음으로써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김태현(金泰炫·47) 교수는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전공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저서 ‘탈냉전기 한국 대외정책의 분석과 평가’ (1998) 등
역서 ‘20년의 위기’(2000) 등
●남성욱(南成旭·46) 교수는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북한 정치경제 전공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미주리대 응용경제학 박사
△북한경제전문가 100인 포럼 이사
△저서 ‘북한의 체제 전망과 남북경협’(2003) 등
역서 ‘김일성의 북한:CIA 북한보고서’(2001·공역) 등
정리=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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