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사퇴]‘공직자 이헌재’의 명암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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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사표가 수리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구조조정의 달인(達人)’ ‘경제위기 해결사’ 등으로 불리는 등 그동안 경제관료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1979년 재무부 재정금융심의관(국장급)으로 재직하던 중 옷을 벗는 등 공직자로서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이번에도 20여 년 전에 있었던 ‘부동산 거래’에 대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퇴해 ‘비운(悲運)의 경제관료’라는 평가도 나온다.

▽외환위기가 낳은 스타=이 경제부총리가 결정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그는 외환위기가 터진 뒤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으로 발탁되면서 특유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후 첫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발탁돼 은행퇴출과 재벌구조조정 등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순탄치 않았던 그의 행보=이 부총리는 서울대 법대와 행정고시(6회)에 수석으로 합격한 뒤 재무부 이재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금융정책과장, 재정금융심의관 등 재무부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일찍이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1979년 이른바 ‘율산사태’로 특혜금융 시비에 휘말려 공직을 떠나면서 험난한 인생역정이 시작됐다. 이후 이 부총리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이번에 문제가 됐던 부동산 매매가 있었던 때도 그 무렵이었다.

그는 귀국해 대우상무, 한국신용평가 사장 등 민간에 있으면서 ‘시장에 대한 감(感)’을 몸으로 익혔다.

그는 금감위원장으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큰 성과’를 남긴 뒤 2000년 1월 재경부 장관으로 영전했으나 당시 권력 내부의 역학 관계 등에 밀려 불과 7개월 만인 그해 8월 물러나야 했다.

▽13개월로 끝난 두 번째 재경부 장관=2004년 2월부터 다시 경제팀 수장으로 영입된 그는 이른바 집권층의 ‘개혁코드’와 기업 등 경제주체의 ‘실용주의 요구’ 사이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기업부민’(起業富民·기업을 일으켜 백성들을 부유하게 한다) 등을 내세우며 기업들의 기(氣)살리기에 나섰고 이른바 ‘개혁 코드’를 대표하는 정치권의 386세대와 각을 세우는 등 현 정부 내에서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대변했다.

공종식 기자 kong@donga.com

▼이헌재 부총리 “투기논란 국민경제에 도움안돼” 자진사퇴 ▼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아 온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 1년여 만인 7일 자진 사퇴했다. 사퇴 결심을 굳힌 뒤 이날 오전 출근하기 위해 재경부 청사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의 표정이 담담해 보인다. 과천 연합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아온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7일 사퇴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날 이 부총리가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고,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와 청와대 참모진에 후임 경제부총리 인선작업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후임 경제부총리로는 여권 내에서 재경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康奉均) 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가운데 윤증현(尹增鉉) 금융감독위원장, 한덕수(韓悳洙) 국무조정실장, 박봉흠(朴奉欽) 전 대통령정책실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부총리는 김경호(金璟浩) 재경부 공보관을 통해 공개한 ‘경제부총리 직을 사임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개인의 문제로 지금처럼 논란과 의혹이 이어지는 것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간신히 회복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국민경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사임한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어 “부총리 직을 떠나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와 처는 투기를 목적으로 부동산 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또 “20여 년 전 집사람 소유 부동산을 등기하는 과정에서 편법 의혹이 일어난 데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2003년 10월 부동산을 매각하면서 어떤 불법이나 편법 또는 이면거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이 부총리는 지난해 2월 취임한 지 1년여 만에 부총리 직에서 물러났다.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은 “이 부총리의 거취와 관련해 여러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청와대는 국민과 언론의 협조를 구한다고 밝혔었다”며 “그런 상황인데도 이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만큼 그 뜻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또 “오늘 오전 11시 반경 김광림(金光琳) 재경부 차관이 직접 청와대를 찾아와 이 부총리의 사표를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달했고 김 실장이 이를 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 부총리 사퇴 직후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한때 1,000 선이 무너지는 등 주식시장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급격한 하락에 대한 반등 심리가 확산되면서 낙폭을 줄여 4일보다 5.46포인트(0.54%) 떨어진 1,007.50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종합지수도 지난 주말(4일)보다 6.58포인트(1.31%) 하락한 495.32로 마감해 거래일 기준으로 하루 만에 500선이 붕괴됐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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