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입증자료 부족…피해확인 난항 겪을듯

  • 입력 2005년 1월 3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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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全基浩)는 징용과 징병, 일본군 위안부 등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를 규명하기 위해 1일부터 6월 30일까지 5개월간 피해자 신고와 진상조사 신청을 받는다고 31일 밝혔다.

신고 대상은 만주사변이 발발한 1931년 9월 18일부터 태평양전쟁이 종료된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돼 노무자 군인 군속 학도병 군위안부 등의 생활을 강요당한 사람이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피해자와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신고하면 된다.

위원회는 피해자 신고를 접수하는 대로 진상조사에 들어가 강제동원에 의한 피해인지를 결정한 뒤 이 사실을 피해자나 피해자 유족에게 통보해 줄 방침이다.

그러나 피해자 중 생존자 비율이 2∼3%에 불과한 데다 피해의 구체적 입증이 쉽지 않아 피해자 확정 과정에서 위원회와 유족 간의 마찰도 예상된다.

▽피해자 신고=1일부터 접수하는 피해자 신고는 본 위원회와 전국의 250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에서 접수한다. 해외거주자는 해당 지역의 공관에 신고하면 된다.

신고서는 위원회의 홈페이지(www.gangje.go.kr)에서 내려받아 6하 원칙에 따라 작성해야 한다. 즉 누가, 얼마 동안, 어디서,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특히 어느 기업 또는 부대에서 근무했는지를 정확히 쓰는 게 좋다.

창씨개명한 사람은 본명과 함께 반드시 개명한 이름을 병기해야 한다. 일본 측이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라며 한국 정부에 넘겨준 자료 전체가 일본식 이름으로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결정과 보상문제=본 위원회와 전국의 16개 광역시도에 설치될 실무위원회는 피해자 신고서가 접수되는 대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간다.

조사를 통해 신고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단되면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피해자로 최종 결정한다.

그러나 자료가 부족해 피해자 확정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위원회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피해자 결정을 엄격하게 하자니 유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고 무작정 인정해 줄 수도 없고 참으로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번 조사는 보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번 조사가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로 결정하는 데 신중을 기할 방침이다.

▽근거 자료 턱없이 부족=문제는 피해 내용이 최소 60여 년 전의 일인 데다 신고자가 피해자의 유족이 대부분이어서 6하 원칙에 따라 피해 내용을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위원회가 징병 및 6개월 이상의 징용 피해자 170여만 명 가운데 현재까지 생존한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은 4만 명 정도로 전체 피해자의 2∼3%에 불과하다.

정부 역시 현재까지 확보한 피해자 명부는 전체 피해자의 20∼25% 수준으로 피해자가 신고한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데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피해자를 처음으로 조사한 것은 자유당 시절인 1957년으로 당시 신고한 인원은 28만 명이었다. 정부가 1971년부터 1993년까지 5차례에 걸쳐 일본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일제 강제동원자 명부’에 나타난 인원은 48만693명.

두 자료를 비교 검토한 학자들은 “이들 자료도 중복된 경우가 많아 현재까지 확보된 피해자는 70만 명 정도”라고 밝혔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피해소송 변호사-학자등 규명委 참여▼

민간인 신분으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全基浩)의 조사 작업에 참여하는 인사들은 거의 모두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우선 경희대 명예교수(경제학과)인 전 위원장은 오랫동안 일제강점기 재일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에 몰두해온 학자. 노동경제가 주 전공인 그는 10여 년에 걸친 연구 끝에 2003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자발적으로 건너갔거나 강제 동원돼 끌려간 한국인 노무자들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해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계급의 상태와 투쟁’이라는 책을 펴냈다.

사무국장을 맡은 최봉태(崔鳳泰) 변호사와 본 위원회 위원인 장완익(張完翼) 변호사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국내외 소송을 10여 년간 도맡아 무료 변론해온 변호사. 최근 정부의 한일협정 문건 공개도 이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소송이 계기가 돼 이뤄졌다.

재야시절 “한일 양국의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들은 지난해 말 정부의 공식기구인 진상규명위원회에 들어가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논문(일제의 조선인 노동력 수탈 연구-강제동원을 중심으로)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민영(金旻榮·군산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은 그동안 산발적으로 연구된 각종 자료를 집대성해 2003년 강제동원 전체 피해자 규모를 처음으로 추산해냈다. 당시 그가 분야별로 추산해낸 피해자 현황은 현재 위원회가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위원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서울대 정진성(鄭鎭星·사회학과) 교수는 군위안부를 체계적으로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서중석(徐仲錫·사학과) 교수와 광운대 김광열(金廣烈·일본학과) 교수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정책과 근현대 한일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학자들이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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