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日시나 특사 면담서 질타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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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머리숙여 사죄1974년 9월 19일 일본의 진사특사로 청와대를 방문한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왼쪽)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머리 숙여 사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문세광 사건’의 처리에서 일본 정부가 보인 무성의함에 노여움을 감추지 않고 질타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日 머리숙여 사죄
1974년 9월 19일 일본의 진사특사로 청와대를 방문한 시나 에쓰사부로 일본 자민당 부총재(왼쪽)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머리 숙여 사죄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문세광 사건’의 처리에서 일본 정부가 보인 무성의함에 노여움을 감추지 않고 질타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금번의 일본 측 태도는 한국을 너무나 무시한 것이다.” 1974년 9월 19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국교 단절 위기로 치달은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의 친서를 들고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자민당 부총재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1시간 45분간의 면담에서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와 우리나라에 대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허다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우리를 우방으로 생각하고 있느냐. 일본 측에서는 법적 도의적인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것은 정치 외교 법을 떠나서 동양적인 예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박 대통령은 “범인은 일본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갖고 들어와 일본 경찰이 사용했던 권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한 뒤 “한국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일본 청년이 한국 내 불법단체의 배후조종을 받고, 한국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한국 경찰이 분실한 총기로 일본 천황이나 총리대신을 저격하다가 그 결과로 황후폐하나 총리부인을 살해했다고 한다면 일본은 한국 정부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라고 따졌다.

그는 “또 일본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미국 청년이 미국 정부를 파괴하고 전복하려는 의도하에 일본 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갖고 일본 관헌이 사용하던 무기로써 미국의 포드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요행히 대통령은 난을 면하고 포드 대통령 부인이 살해되었다고 한다면 일본 정부는 미국에 대해 법적 도의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그는 “나는 한때 일본 정부가 끝내 우리에게 이런 태도로 나온다면 일본을 우방으로 인정할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다”며 국교 단절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조총련에 대한 일본의 미온적 태도에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일본에 있는 조선대학은 공산당 간부를 교육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파괴하고 전복하기 위한 간첩양성소다. 왜 조총련을 그렇게도 비호하고 두둔하느냐. 그런데도 기무라 외상은 한국이 북으로부터 위협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또 한국 정부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을 일본 의회에서 행했다. 이는 북괴의 주장과 일치되는 것이다”고 몰아붙였다.

그는 “악화일로를 치닫던 양국관계가 일단 타결을 보게 된 것을 다행한 일로 생각한다”면서도 “이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양국 정부와 국민이 서로의 특수한 입장을 이해하면서 상호 존중하고 신의를 지켜나가야만 항구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시나 부총재는 “지당하신 말씀이다. 기무라 외상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에 있어서 유일한 정부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한 것은 경솔한 발언으로, 귀국하면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 특히 외무성은 조총련을 건드리는 것을 ‘터부’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의 정치적 장래를 생각할 때 좌경화 하더라도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시나 부총재는 “‘건드리지 않으면 말썽이 없다’는 격언에 따라 조총련을 종기 다루듯 하는 사람이 있으나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대한해협 단골 특사’ 시나 日자민당 부총재▼

20일 공개된 ‘문세광(文世光) 사건’ 관련 문서에는 1960, 70년대 ‘대한해협 특사’로 맹활약했던 시나 에쓰사부로 당시 자민당 부총재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시나 부총재는 ‘문세광 사건’으로 국교 단절 일보 직전까지 간 한일관계를 봉합하기 위해 1974년 9월 19일 서울에 왔다. 주일 한국대사관측으로부터 한일국교정상화의 주역이자 일본정치의 거물로서 한국에 특사로 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한 것이었다.

그 무렵 일본 외무성은 ‘저격사건에 법적 도의적 책임이 없다’ ‘한국은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다’라는 등의 자극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나 부총재는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의 친서를 박 대통령에게 전달해 국교 단절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길 수 있게 했다.

이에 앞서 1965년 2월 일본 외상이었던 그는 광복 후 일본 관료로는 처음으로 방한해 ‘한일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에 가조인했다. 그는 같은 해 6월 22일엔 이동원(李東元) 한국 외무장관과 일본에서 한일협정문서에 서명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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