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소재-세계관 눈길”… 202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
중편소설 “이태원참사-계엄 등 시사적 소재… 밀도는 아쉬워”
단편소설 “생존적 불확실 등 사회 분위기 작품에 드러나”
시 “시어 선택 날카롭고 예민… 거대 담론 대신 주변 이야기”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응모작을 살펴보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소재의 다양화와 응모 편수 증가는 그만큼 많은 이들이 문학을 가까이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는 신호”라고 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올해 응모작들은 소재가 한층 다양해져 각기 다른 세계를 이야기로 끌어오려는 시도가 반가웠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사건과 모티프를 잡아놓고도 이를 문학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작품들이 적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26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9개 부문에 접수된 작품은 총 9113편으로, 지난해(7384편)보다 1729편이 더 늘었다. 부문별 응모 편수는 중편소설 436편, 단편소설 787편, 시 6878편, 시조 488편, 희곡 101편, 동화 273편, 시나리오 81편, 문학평론 18편, 영화평론 51편이었다.
예심 심사위원은 △중편소설 손홍규·정한아 소설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단편소설 김성중·손보미·안보윤 소설가, 강동호 문학평론가 △시 김상혁·서효인 시인 △시나리오 정윤수 영화감독,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가 맡았다.
● “소재 폭 넓고 문장력 높아져”
중편소설 응모작은 다양한 소재를 다뤘지만, 문징력과 서사력이 결합한 ‘중편다운 밀도’를 갖춘 작품은 드물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여울 평론가는 “이태원 참사, 비상계엄 등 시사적 소재가 다양하게 등장했지만 문학적 형상화의 밀도는 부족했다”며 “살인 등 강력범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은 폭력이 일상화된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홍규 소설가는 “다양한 시공간을 다루지만 현실 문제를 직접적으로 파고든 작품은 적었다”며 “유머와 여유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고 했다. 정한아 소설가는 “중편이 줄 수 있는 회복·치유의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은 드물었다”면서도 “편차가 큰 가운데도 울림 있는 작품은 분명히 존재했다”고 평했다.
단편소설 부문은 소재의 폭은 넓은 반면에 문체와 톤이 비슷해 ‘음역대가 비슷한’ 작품이 많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성중 소설가는 “평균적인 문장력은 높아졌고 못 쓰는 소설은 확연히 줄었지만 마지막에 힘이 빠지는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강동호 평론가는 “가족, 돌봄, 장애, 부동산, 플랫폼 노동 등 한쪽에 경향이 몰린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안보윤 소설가는 “한 사람을 악인으로 몰아 분노를 터뜨리는 방식의 서술에서 벗어난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보미 소설가는 “직업적·생존적 불확실 등 사회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반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 “잔잔한 우울과 불안이 두드러져”
시 부문은 내면의 불안과 고립감 등 예민한 정서가 두드러진 응모작이 많았다. 서효인 시인은 “정치적 이슈는 뉴스의 과잉 때문인지 시로 가져온 경우가 드물었다”며 “시어 선택은 전반적으로 날카롭고 예민했다”고 말했다. 김상혁 시인은 “거대 담론은 사라지고 생활·주변 이야기로 이동하고 있으며, 잔잔한 우울과 불안이 응모작 전반을 관통했다”며 “응모 편수가 늘어난 것은 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고 평가했다.
시나리오 부문에선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표현 방식이 한층 세련돼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윤수 감독은 “예전보다 훨씬 의연하고 가볍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고 복수, 정의, 사이비 종교, 소셜미디어 등 사회적 주제도 세련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조정준 대표는 “전체적으로 편차가 줄고 평균적 완성도가 올라갔다”면서도 “아이템은 흥미롭지만 서사로 충분히 확장되지 못한 작품들이 있었다”고 했다. 또 공상과학(SF) 응모작이 증가했으나 논리적 설계 없이 ‘SF를 가장한 판타지’가 많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예심 결과 △중편소설 11편(11명) △단편소설 12편(12명) △시 58편(11명) △시나리오 11편(11명)이 본심에 올랐다. 시조·희곡·동화·문학평론·영화평론은 예심 없이 본심에서 당선작을 정한다. 당선자에게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동아일보 내년 1월 1일자 지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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