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동북아 核경쟁 우려된다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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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프로그램 추진 ‘의혹’과 관련해 제2의 북핵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결과가 발표돼야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실험이 핵 농축이나 재처리 등 핵무기 개발 계획과 관계없는 ‘일회성 과학실험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라늄 분리실험과 6자회담▼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정부와 언론은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이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핵 확산 등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의 실험규모는 북한 등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이라며 “이번 일이 북핵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지 않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라고 논평했다. 미국이 ‘내심’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그 의미를 확대하지 않으려는 것은 한국의 분리실험이 북핵 해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동북아 역내 국가들 사이의 핵개발 경쟁도 부추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일본 관방장관은 “IAEA의 틀 속에서 관리돼야 할 것이 누락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6자회담에서도 논의될 것 같다”고 밝혔다. 경제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춰 ‘보통국가’를 지향하고자 하는 일본으로서는 북핵 문제와 함께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을 ‘빌미’로 핵무장을 추진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직 북한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지만, HEU 핵개발 프로그램 문제로 궁지에 몰린 북한은 남한의 우라늄 분리실험을 빌미로 6자회담 등에서 ‘반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주장을 펴며 핵개발의 ‘이중 잣대’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개입하지 않은 과학자들의 실험이라 하더라도 소량의 우라늄 농축에 성공한 것은 ‘우리의 핵개발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른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핵개발 경쟁을 촉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HEU 핵개발 의혹과 남한의 우라늄 분리실험 성공 등으로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를 금지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위반 여부도 논쟁거리다. 단기적으로 한국의 우라늄 분리실험은 6자회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향후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핵개발 문제도 함께 다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핵국가에 ‘안전보장’ 필요▼

물론 한국이 한 것처럼 북한도 HEU 핵개발 프로그램을 연구용 또는 저농축용 등이라고 해명하고 자진신고하고 폐기한다면 북핵 문제는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6자회담 등에서 핵을 가진 나라들이 핵을 갖지 못한 나라들에 핵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핵 불사용 보장 조약’ 차원의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북한이 핵 포기의 전제조건으로 북-미 불가침조약 또는 다자 안전 담보를 요구한 것도 미국이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북한에 대한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핵 불균형과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안보협의체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남과 북은 핵의 평화적 이용까지 포기한 비핵화공동선언의 내용을 재검토해 새로운 남북합의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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