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의혹]외교부가 묵살했나…AP의 착각인가

  • 입력 2004년 6월 24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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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통신의 TV뉴스매체인 APTN이 6월초 입수해 24일 공개한 김선일씨의 납치 직후 심문 모습(왼쪽).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알 자지라의 21일 방송 화면과는 달리 말끔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AP 연합
AP 통신의 TV뉴스매체인 APTN이 6월초 입수해 24일 공개한 김선일씨의 납치 직후 심문 모습(왼쪽).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알 자지라의 21일 방송 화면과는 달리 말끔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AP 연합
외교통상부가 6월 초 김선일씨 피랍 여부에 대한 확인 요청을 받고도 묵살했다는 AP통신의 24일 보도가 사실이라면 외교부 차원을 넘어 정부 전체가 치명타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는 납치단체가 공개적으로 살해 위협을 하기 18일쯤 전이어서 외교부가 기민하게 대처했더라면 김씨 석방 교섭을 벌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최악의 사태를 피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P측은 AP와 외교부간에 전화 통화한 당사자들의 이름 등을 밝히지 않고 있어 당분간 사실 관계를 둘러싸고 양측의 진실 게임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정부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빗발치는 등 여론이 심상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당혹한 외교부=외교부는 이날 오전 6시경 AP 보도가 나간 뒤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6월 초 AP측으로부터 그러한 문의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등을 다각도로 논의했다.

외교부는 이 문제에 부처의 ‘존망’이 걸린 것으로 보고 AP측에 “누가 외교부 누구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거듭 요청했다.

신봉길(申鳳吉)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은 정부의 공신력은 물론 개인의 생명과 관련 있다”며 “AP가 진실을 안 밝히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외교부 일각에선 혹시나 이 사건이 3년 전 ‘중국의 한국인 마약사범 처형 사건’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이는 2001년 중국 당국의 한국인 처형을 둘러싼 외교 분쟁에서 한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외교부의 잇따른 문책 인사를 불러온 사건. 당시 한국측은 ‘사전 통보 없는 사형집행’이라며 거세게 몰아붙였으나 중국측은 ‘통보했다’고 맞섰다. 결국 중국측이 주중 한국대사관 등에 팩스로 보낸 공문이 발견돼 한국은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해야 했다.

▽AP측의 모호한 답변=AP는 이날 오후 3시경 “6월 3일 전화 통화에서 한국 외교부 관리가 ‘김선일씨 억류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는 공식 답변을 보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비디오테이프가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한 AP 기자와 외교부 관리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았다.

알 자지라가 ‘김씨 살해 위협’ 방송을 처음 내보낸 21일 오전 이후 24일까지 사흘 동안 AP가 왜 이를 보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빠져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AP 서울지국은 이날 오전까지 “뉴욕 본사에서 일절 사실을 확인해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하다가 거듭된 확인 요구에 “본사와 협의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비디오테이프의 전말=6월 초 이라크 바그다드의 AP 텔레비전 뉴스(APTN) 사무실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배달원에 의해 비디오테이프가 전달됐다. 이 테이프에는 김씨가 얼굴이 화면에 나오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심문을 당하며 미국을 비난하는 발언이 담겨 있었다.

APTN은 즉시 이를 관련 회사인 AP통신에 알렸고 AP통신은 6월 3일 AP 서울지국을 통해 한국 외교부에 사실 여부를 문의했다는 게 보도 내용이다. 외교부가 피랍 사실을 부인하자 AP는 피랍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해 방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테이프에는 김씨의 모습만 나올 뿐 아랍인의 모습은 나오지 않고 어떠한 요구조건도 없어 테이프만으로 억류 사실을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APTN은 이후 20일 정도 이 테이프를 방영치 않았다가 김씨가 전격 살해되자 그간 보도하지 않았던 경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를 공개했다.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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