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대상 ‘우선구매제’ 부처마다 제각각 “뭘 먼저 사나

  • 입력 2004년 6월 17일 20시 33분


《정부 각 부처가 각종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를 중구난방식으로 도입하면서 정부투자기관과 기업 등에 혼란을 부르고 있다. 환경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각 부처는 최근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를 새로 실시하거나 확대하는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다. 우선구매제도란 공공기관이 물품을 살 때 장애인 기업 제품이나 친환경 제품, 기술인증을 받은 제품 등 정부가 지정한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구입해야 하는 제도. 이 제도를 주관하는 각 부처는 다른 부처와 협의도 없이 자신의 제도만을 서둘러 발표하고 있어 혼선을 빚고 있다.》

▽쏟아지는 우선구매제도=환경부는 그동안 실시해 온 ‘환경마크제품 우선구매제도’를 ‘친환경상품 의무구매제도’로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환경부는 친환경상품 구매 실적을 공공기관 평가자료로 활용하는 ‘친환경상품 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있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친환경상품 구매가 사실상 의무화된다.

보건복지부도 현재 실시 중인 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제도를 9월부터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15일 공공기관이 신기술인증을 받은 제품을 20% 이상 의무 구매하는 제도를 하반기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신뢰성인증마크(R마크)를 획득한 제품을 공공기관이 우선 구매하는 제도를 확대 실시할 방침이다.

이 밖에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서는 여성 기업인이 이끄는 기업 제품을 공공기관이 우선 구매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마구잡이 추진=각 부처가 우후죽순처럼 제도를 발표하면서 관련 부처간 협의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다른 부처의 우선구매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공무원도 있을 정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구매 품목이 환경부가 추진하는 제도와 겹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환경부에서도 우선구매제도를 추진하는 게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우선구매 품목이 겹칠 경우 공공기관은 어떤 것을 먼저 사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을 것이 뻔하다. 또 현재 거론되고 있는 5가지 제도가 모두 실시되면 특정 품목에 대한 공공기관의 구매 선택권이 거의 사라질 우려도 있다.

한 정부기관 구매담당자는 “정부가 우선순위를 정해 주지 않고 부처마다 우선구매를 강제하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일선 기관은 어느 부처의 비위를 먼저 맞춰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투자기관 구매담당자는 “뭘 먼저 사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여성 장애인’들이 ‘친환경’기술로 만든 ‘신기술인증’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는 건가요?”라고 반문했다.

몇몇 부처는 이 제도를 둘러싸고 충돌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산업자원부 담당자는 “신기술인증 제품 우선구매는 대통령 지시로 실시되는 제도”라며 “다른 제도와 겹쳐도 신기술인증 제품을 우선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환경부 담당자는 “친환경상품 구매는 의무사항이어서 우리 제도가 우선이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실 김종화(金鍾和) 법제관은 “우선구매 품목이 겹칠 때 우선순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