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중도경쟁]한나라당 “약간 왼쪽으로”

  • 입력 2004년 4월 28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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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를 왼쪽으로 돌려라.”

4·15총선 후 한나라당에 떨어진 지상 명령이다.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굳어진 당의 이념적 편향성을 바로 잡지 못할 경우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1997,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했고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원내 1당의 지위마저 뺏긴 데 따른 위기감이 이 같은 변화의 추동력이다.

수도권 출신인 남경필(南景弼)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이 그동안 지나치게 오른쪽에 서서 ‘편향된 보수’란 비판을 받아왔다”며 “지금보다는 상당히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념적 지향점을 ‘중간지대’에 맞추는 것은 선거전략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게 당 지도부의 판단이다.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극단적 성향을 꺼리는 중간지대 유권자들이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여준(尹汝雋) 여의도연구소장은 “보수와 진보세력의 고정지지층 30%씩을 제외한 나머지 40%의 중간지대를 누가 흡인하느냐에 승부가 갈린다”며 “기존 보수 지지층에 중간지대의 표심(票心)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당 지도부는 보수세력의 ‘리모델링’ 전략을 채택했다. 수구 기득권 집단으로 굳어진 기존의 보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선 끊임없이 변하고 고치는 개혁적 보수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 전략의 핵심이다.

최근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보수(保守)는 보수(補修)다”라고 단언한 것도 이 같은 변화의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총선 후 당 지도부가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민감한 대북정책에 대해 ‘유연성’을 강조하며 전향적으로 노선 수정을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의 정책개발을 주도할 박세일(朴世逸) 비례대표 당선자는 “문명사적 변혁기인 21세기엔 시스템 자체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윤 소장도 “이제 유권자들은 이념적 성향보다는 어느 쪽이 더 개혁적이냐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내에선 이념적 좌표 이동의 속도와 지향점을 둘러싸고 강경 보수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향후 당론 조율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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