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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1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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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한길로(韓吉路·42) 박사는 사자의 억울함을 줄이기 위해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부검과 법의학적 판단을 전담하는 ‘서울법의(法醫)의원’을 개원했다. 부검 및 법의학 전문병원으로는 국내 최초. 경찰이나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검안(檢案)을 주관하거나 참관하며 일반인과 법원 변호사 등의 법률자문역도 맡는다.
한 박사는 이름 그대로 남들이 꺼리는 길을 ‘천직’ 삼아 ‘한길로’ 뛰어 온 인물이다. 2001년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의 부교수직을 박차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평연구원으로 옮겨 주위를 놀라게 했다.
명문대 의대 부교수가 보건복지부로 자리를 옮기면 최소한 서기관을 보장받지만, 행정자치부 소속의 국과수에서 그에게 내민 자리는 의무사무관. 월급은 교수 시절보다 3분의 1이 적었다. 주위에서는 한결같이 말렸다.
“현장에서 공부하며 일하고 싶었죠. 의대에서 4년 동안 100구의 시신밖에 검안하지 못했지만 국과수에서는 3년 동안 1200구 이상의 시신을 검안하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 박사는 1999년부터 서울경찰청 현장감식반 수사관들, 법의학자 등과 함께 ‘법의 감식 연구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중요한 변사 사건이 생겼을 때는 연구회 소속 수사관들과 함께 즉시 출동한다. 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현장 조사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매주 한두 차례 대학, 경찰서, 소방서 등에서 ‘죽은 자의 변’에 대해 강의한다.
한 박사는 “미국에서는 변사 사건이 생기면 곧바로 법의 병리 전문의 자격을 가진 법의관이 파견돼 사인을 규명한다”면서 “서울에서만 한 해 4000여건의 변사가 생기지만 3000여건이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검안서 한 장으로 사건이 종결된다”고 말했다.
한 박사는 사인이 불명확한 주검은 전문가의 검안 없이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현재 30여명뿐인 법의 전문의를 최소한 200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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