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여성票 잡기 ‘급조된 善心’

  • 입력 2004년 2월 16일 23시 38분


“위헌 시비 때문에 찜찜해 하면서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찬성’ 쪽으로 돌아선다.”

율사 출신인 민주당의 한 의원은 16일 정치개혁특위 여야 간사단 회의에서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했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었다.

당초 대부분의 위원들은 특정 선거구의 입후보자를 특정 성(性)으로 제한하는 입법은 위헌이라는 비판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은 ‘아이디어’ 수준에 그칠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꼭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눈앞에 아른거리는 여성표의 위력 때문인 듯하다.

지난해 11월 이를 정치개혁안의 하나로 채택했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서조차 위헌 논란 때문에 “일단 정개특위 논의에 부쳐 보자”는 어정쩡한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서로 ‘원조 논쟁’까지 벌이며 여성계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자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도 슬쩍 입장을 바꿔 13일 당 운영위에서 이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율사 출신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위헌이면 위헌이지 갑자기 헌법 원칙이 달라졌느냐. 법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담합을 해도 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물론 여성의 정치진출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엔 정신까지 들며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입법은 평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한나라당 김정숙(金貞淑) 여성위원장의 주장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그러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여성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일단 여성전용선거구를 만들고 볼 경우 위헌 판정이 난 2000년 개정 선거법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여성 정치인들 중에도 “여성끼리 경쟁해서 선물처럼 받는 금배지라면 치사해서 거부하겠다”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일부 학자와 여성계 인사들은 지역구 공천이 남성 위주로 흐르거나 비례대표 50% 배정이 유명무실해지는 역작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박성원 정치부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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