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눈]알렉산드로 보론초프/평양서 맡긴 짐 인천공항서 찾다

  • 입력 2004년 2월 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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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11월 북한을 방문했다. 4개월 만에 다시 찾은 북한에서 신선한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평양시내 곳곳에서는 재건축이 한창이었다. 대부분의 공사는 마무리 단계였다. 특히 철도역에서 평양 대극장까지의 승리거리 수km 구간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건물은 그대로였으나 외벽을 고치고 낡은 창문을 바꿨다.

평양시인민위원회 관계자는 “중심가와 구 시가지를 전면 개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저층 아파트를 헐고 고층 아파트를 세우려는 계획도 있었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로 들어오는 길 주변도 정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정치·심리적인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수도를 보기 좋게 꾸며 ‘고난의 시기’가 끝나고 건설과 번영의 새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전력 사정도 좋아졌다. 집집마다 전깃불이 켜져 있고 시내 중심가도 밝아졌다. 원산에서 평양까지 200km를 달리면서 시골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온 것을 보았다.

최근 2년 동안 풍년으로 주민들의 표정도 밝았다. 기후가 좋았던 까닭도 있지만 대대적인 농업기반시설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또 과거처럼 일반 대중을 동원하지 않고 농업노동자만 농사에 참여했고 이것이 성공한 것이었다.

‘개혁’보다는 ‘개조’라는 용어를 쓰지만 ‘변화’라는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평양의 통일거리에는 현대식 편의시설과 위생기준을 갖춘 대형 식품매장이 문을 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외국인도 이곳에서 물건을 살 수 있게 허용한다는 것이다.

2002년 7월 경제개선 조치의 결과를 각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수연구소에서는 업무에 따라 직원들에게 임금을 2000∼6000원씩 차등 지급했다.

또 북한 각지의 사찰에서 처음으로 승려들과 만날 수 있었다. 전에는 사찰이나 교회를 방문하면 “성직자들이 잠깐 외출했다”는 대답만 들어야 했다. 이번에는 평양 대성산 광법사와 묘향산 보현사에서 승려들을 만났다. 러시아정교회의 ‘성(聖) 삼위일체’ 성당도 빠른 속도로 짓고 있었다.

남북한 교류가 활발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평양에는 정주영 기념 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금강산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만났다. 중년 남녀도 있었지만 대학생도 많았다. 관광비용이 많이 싸졌다고 한다.

북한 영내에서 현대그룹 직원들이 탄 버스와 트럭, 중장비가 분주히 오가는 것도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이들은 북한 노동자와 함께 일한다. 안내를 맡은 북한 청년은 현지에서 일하는 젊은 한국 여성과 자연스럽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한의 보통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접촉이 자유로운 것은 아직 아니지만….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바로 서울로 가야 했다.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베이징∼인천간 대한항공 항공권을 보여주며 “베이징공항에서 짐을 옮겨 실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아마도 순안공항에서 고려민항에 실은 짐을 인천공항에서 찾은 최초의 ‘일반 승객’이 아닌가 한다.

북한과 미국의 첨예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경제상황은 호전되고 있고 느리지만 개혁이 계속되고 있으며 남북한 관계도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로 보론초프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한국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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